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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votion · 默想

    오늘의 묵상 : 사사기 9:22–45

    今日默想:士師記 9:22-45

    한경우··조회 81

    제목 : 하나님이 악한 영을 보내시매

    어제 본문에서 요담은 그리심 산 꼭대기에 올라가 저주를 선포하고 브엘로 도망했다. 그는 말만 남기고 이야기에서 사라졌다. 그러니 그 말이 한 사람의 분한 외침으로 끝나는가 싶었다. 그런데 오늘부터 시작되는 단락이 그 말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보여 준다.

    그 전에 오늘 본문이 놓인 자리를 먼저 보아야 한다. 아비멜렉의 몰락 이야기는 네 부분으로 짜여 있다. 먼저 22절에서 24절까지가 이 모든 일이 왜 일어나는지를 신학적으로 설명한다. 이어서 25절에서 41절까지는 세겜이 아비멜렉을 배반하는 이야기이고, 42절에서 55절까지는 거꾸로 아비멜렉이 세겜을 응징하는 이야기다. 그리고 마지막 56절과 57절이 다시 한 번 이 모든 일의 뜻을 신학적으로 정리하며 닫는다. 그러니까 신학적 설명이 앞뒤를 감싸고, 그 안에서 배신과 응징이 서로 마주 보는 짜임이다.

    이 짜임이 왜 중요한가. 가운데 놓인 두 사건만 떼어 놓고 보면 이것은 그저 흔한 권력 다툼이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원수가 되어 서로를 죽이는 이야기일 뿐이다. 그런데 저자는 그 앞뒤에 해설을 단단히 붙여 놓았다. 이것을 사람들끼리의 싸움으로만 읽지 말라는 것이다. 오늘 본문은 그 앞의 해설과 배신 이야기, 그리고 응징 이야기의 첫머리까지다.

    삿 9:22-23 아비멜렉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지 삼 년에 23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 사이에 악한 영을 보내시매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배반하였으니

    먼저 낱말 하나를 눈여겨보자. 9장 6절에서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세울 때 저자는 '왕으로 삼았다'고 적었다. 그런데 22절에서는 왕권을 가리키는 그 낱말을 쓰지 않고 '군림하다, 실권을 쥐다'에 가까운 다른 동사를 쓴다. 저자가 그의 통치를 정당한 왕권으로 미화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간이 삼 년이다. 사사기에 기록된 어떤 압제 기간이나 사사의 통치 기간과 견주어도 짧다. 그만큼 하나님의 개입이 빨리 왔다.

    23절이 이 장의 분수령이다. 흐름을 따라와 보자. 아비멜렉이 형제들을 죽이고 왕이 되는 9장 1절에서 6절까지, 하나님의 이름은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요담이 외치는 7절에서 21절까지는 그의 입을 통해 두 번 언급될 뿐이었다. 그런데 23절에서 마침내 하나님이 직접 행동하신다.

    그런데 그 행동이 우리가 기대하던 것과 다르다. 사사기에서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에는 정해진 모양이 있었다. 옷니엘에게 여호와의 영이 임하셨고(3:10), 기드온을 여호와의 영이 옷 입히셨고(6:34), 훗날 입다와 삼손에게도 임하신다. 그 영은 언제나 흩어진 백성을 모으고 구원을 이루는 영이었다. 그런데 아비멜렉에게는 여호와의 영이 임하지 않는다. 대신 하나님이 악한 영을 보내신다. 그것도 그에게 임하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와 세겜 사이에 보내신다.

    이 악한 영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두고 학자들의 논쟁이 분분하다. 그러나 본문의 초점은 그 정체에 있지 않다. 본문이 말하려는 것은 분명하다.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세겜 사이의 관계를 깨뜨리시고, 그 깨어짐을 심판의 수단으로 쓰셨다는 것이다. 여호와의 영이 사람을 모아 구원하는 영이라면, 여기서는 사람과 사람이 갈라지는 일이 보응의 통로가 된다.

    삿 9:24 이는 여룹바알의 아들 칠십 명에게 저지른 포학한 일을 갚되 그들을 죽여 피 흘린 죄를 그들의 형제 아비멜렉과 아비멜렉의 손을 도와 그의 형제들을 죽이게 한 세겜 사람들에게로 돌아가게 하심이라

    심판의 근거가 나온다. 무고한 피다. 그리고 이 절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그 피의 값이 아비멜렉에게만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본문은 '아비멜렉의 손을 도와 그의 형제들을 죽이게 한 세겜 사람들에게로'라고 분명히 적는다. 악을 행한 자만이 아니라 그 악에 손을 빌려준 자도 함께 갚음을 받는다.

    삿 9:25 세겜 사람들이 산들의 꼭대기에 사람을 매복시켜 아비멜렉을 엿보게 하고 그 길로 지나는 모든 자를 다 강탈하게 하니 어떤 사람이 그것을 아비멜렉에게 알리니라

    악한 영이 보내진 결과가 이렇게 시작된다. 세겜 사람들이 산꼭대기에 사람을 숨겨 두고 길 가는 사람을 턴다. 이것을 단순한 강도질로 보면 안 된다. 그 길은 아비멜렉의 영토다. 통치자가 자기 땅의 길 하나 지키지 못한다는 것을 온 세상에 보여 주는 행위다. 삼 년 전 은 칠십 개를 내주며 그를 왕으로 세웠던 바로 그 사람들이 지금 그의 권위를 무너뜨리고 있다.

    그때 새 인물이 들어온다. 에벳의 아들 가알이다. 그가 등장하는 방식을 보라. 형제들을 데리고 세겜으로 온다. 아비멜렉이 외가 친척들을 등에 업고 등장했던 그 방식 그대로다. 그리고 세겜 사람들은 이번에도 사람을 보고 마음을 준다.

    삿 9:27-28 그들이 밭에 가서 포도를 거두어다가 밟아 짜서 연회를 베풀고 그들의 신당에 들어가서 먹고 마시며 아비멜렉을 저주하니 28 에벳의 아들 가알이 이르되 아비멜렉은 누구며 세겜은 누구기에 우리가 아비멜렉을 섬기리요 그가 여룹바알의 아들이 아니냐 그의 신복은 스불이 아니냐 차라리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후손을 섬길 것이라 우리가 어찌 아비멜렉을 섬기리요

    장소를 보라. 신당이다. 아비멜렉이 왕이 될 자금을 받아냈던 바로 그 바알브릿 신전이다. 왕권이 시작된 자리에서 그 왕이 저주를 받는다.

    그리고 가알의 말이 오늘 본문에서 가장 아이러니하다. 그는 아비멜렉을 '여룹바알의 아들'이라고 부른다. 아비멜렉이 왕이 된 근거가 무엇이었는가. "나는 너희와 골육이라"는 혈연이었다. 그런데 가알은 그 혈연의 반쪽을 들어 올려 그를 친다. 네 아비는 결국 저쪽 사람 아니냐는 것이다. 게다가 그는 차라리 하몰의 후손을 섬기자고 한다. 하몰은 창세기 34장에 나오는 세겜의 옛 통치자이고 가나안 사람이다. 이스라엘 혈통을 아예 걷어치우고 옛 가나안 가문으로 돌아가자는 말이다. 세겜이 얼마나 하나님을 멀리 떠났는지를 이 한마디가 보여 준다. 자기가 세운 논리로 왕이 된 사람이, 바로 그 논리에 공격받는 것이다.

    그런데 세겜 안에는 아비멜렉의 사람이 심겨 있었다. 성읍의 방백 스불이다. 그가 가알의 말을 몰래 아비멜렉에게 알리고, 아비멜렉의 군대가 밤에 밭에 매복한다. 다음 장면이 압권이다.

    삿 9:36 가알이 그 백성을 보고 스불에게 이르되 보라 백성이 산 꼭대기에서부터 내려오는도다 하니 스불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산 그림자를 사람으로 보았느니라 하는지라

    스불은 시간을 끈다. 네 눈이 잘못 본 것이라고 한다. 가알이 성문 앞에 붙들려 있는 동안 아비멜렉의 군대가 가까이 다가온다. 그리고 더 이상 감출 수 없게 되었을 때 스불이 입을 연다.

    삿 9:38 스불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전에 말하기를 아비멜렉이 누구이기에 우리가 그를 섬기리요 하던 그 입이 이제 어디 있느냐 이들이 네가 업신여기던 그 백성이 아니냐 청하노니 이제 나가서 그들과 싸우라 하니

    그리고 결과는 허무하다. 가알은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쫓겨 도망한다. 연회 자리에서 "이 백성이 내 수하에 있었더라면 내가 아비멜렉을 제거하였으리라"고 했던 그 사람이다. 결국 소리만 요란하고 속은 비어 있는 그릇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가알이 쫓겨난 것으로 일이 정리된 것처럼 보이지만, 아비멜렉은 끝낸 것이 아니었다.

    삿 9:42-43 이튿날 백성이 밭으로 나오매 사람들이 그것을 아비멜렉에게 알리니라 43 아비멜렉이 자기 백성을 세 무리로 나누어 밭에 매복시켰더니 백성이 성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일어나 그들을 치되

    이튿날 아침, 세겜 사람들은 여느 날처럼 밭으로 나간다. 그리고 그 평범한 아침에 아비멜렉이 덮친다.

    여기서 조심스럽게 한 가지를 놓아 본다. 그의 아버지 기드온도 삼백 명을 세 대로 나누어 미디안 진영을 쳤다(7:16). 저자가 그 울림을 의도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같은 방식으로 아버지는 이방의 압제자를 쳤고, 아들은 자기를 왕으로 세워 준 동족을 친다.

    삿 9:45 아비멜렉이 그 날 종일토록 그 성을 쳐서 마침내는 점령하고 거기 있는 백성을 죽이며 그 성을 헐고 소금을 뿌리니라

    소금을 뿌리는 행위를 두고는 두 가지로 읽는다. 다시는 아무것도 자라지 못하게 하는 저주의 표시로 보기도 하고, 그 자리를 갈아엎어 끝내 버리는 의식으로 보기도 한다. 어느 쪽을 택하든 분명한 것이 있다. 아비멜렉은 자기를 왕으로 만들어 준 그 성읍을 땅까지 갈아엎었다.

    그리고 요담이 그리심 산에서 외쳤던 말을 기억해 보라. "아비멜렉에게서 불이 나와서 세겜 사람들과 밀로의 집을 사를 것이요." 그 말이 여기서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본문이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은 이것이다. 아비멜렉과 세겜의 동맹은 사람이 만든 정치적 연합이었다. 은 칠십 개와 혈연으로 맺어진 연합이었다. 그런데 그 연합을 깨뜨리신 분은 하나님이셨다. 그리고 그 심판의 방식이 놀랍다. 밖에서 원수를 보내시지 않았다. 서로를 이용했던 사람들이 서로를 무너뜨리게 하셨다. 사사기에서 여호와의 영은 흩어진 백성을 모아 구원을 이루는 영이었다. 그런데 진실과 의 없이 맺어진 연합 앞에서는, 갈라지는 일 자체가 하나님의 갚으심이 된다.

    오늘 이 본문을 읽으면서 내 마음에 오래 남은 것은 이름 없이 죽어 간 사람들이다. 아비멜렉은 왕이 되려고 셈을 했고, 가알은 그 자리를 빼앗으려고 셈을 했고, 스불은 자기 줄을 지키려고 셈을 했다. 세 사람 다 자기 나름대로 계산이 있었고, 그 계산 안에 하나님은 없었다. 그런데 그 계산의 값을 누가 치렀는가. 그날 아침 여느 때처럼 밭으로 나갔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저 하루 일을 하러 나갔을 뿐인데 그 밭에서 죽었고, 살던 성읍은 헐리고 그 땅에는 소금이 뿌려졌다. 물론 본문은 세겜 사람들을 무죄하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이 은 칠십 개를 내어 아비멜렉의 손을 도왔다고 하나님이 분명히 지적하신다. 그러니 그들도 갚음을 받은 것이 맞다. 그래도 마음이 무겁다. 한 사람의 욕심이 얼마나 많은 사람의 일상을 갈아엎을 수 있는지를 보기 때문이다. 그러면 나는 어떤가. 나도 내 자리에서 늘 무언가를 셈한다. 이렇게 하면 일이 되겠다, 저렇게 하면 모양이 좋겠다, 지금은 이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낫겠다. 그 셈이 나쁜 마음에서 나오는 것만은 아니다. 다만 그 셈 안에 하나님이 계신지를 물으면 나는 늘 자신이 없다. 그리고 더 무서운 것이 있다. 내 셈의 값을 나 혼자 치른다면 그것은 내 일로 끝나겠지만, 내가 세운 계획과 내가 한 말의 값을 성도들이 함께 치르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목회자의 죄가 무서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것은 혼자 짓고 혼자 감당하는 죄가 아니다.그렇기에 오늘은 무엇을 셈하기 전에 그 셈을 먼저 하나님 앞에 내어놓기를... 그래서 나로 인하여 누군가의 평범한 하루가 무너지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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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標題:神差來惡靈

    昨天的經文中,約坦爬上基利心山頂宣告咒詛,然後逃往比珥。他只留下話語,便從故事中消失了。因此,那話語似乎只不過是一個人憤怒的呼喊而已。然而,從今天開始的段落,卻要展示那話語是如何成就的。

    在此之前,我們要先看看今天經文所處的位置。亞比米勒垮台的故事由四個部分組成。首先,22至24節從神學角度說明這一切為何發生。接著,25至41節是示劍人背叛亞比米勒的故事,42至55節則反過來是亞比米勒懲罰示劍的故事。最後,56至57節再次從神學角度總結這一切的意義,並作結。也就是說,神學性的解說包裹在前後,中間則是背叛與懲罰彼此對照的結構。

    這個結構為何重要?若只單獨看中間的兩個事件,這不過是一場尋常的權力鬥爭而已——不過是昨日的同志成為今日的仇敵、彼此殘殺的故事。然而作者卻在前後牢牢附上了解說。這是在告訴我們,不要只把這件事讀作人與人之間的爭鬥。今天的經文包括前面的解說、背叛的故事,以及懲罰故事的開頭。

    士9:22-23 亞比米勒管理以色列人三年。23 神使惡靈降在亞比米勒和示劍人中間,示劍人就以詭詐待亞比米勒,

    首先讓我們留意一個詞。在9章6節,示劍人立亞比米勒時,作者寫的是「立他為王」。但在22節,作者卻沒有使用表示王權的那個詞,而是用了另一個更接近「掌權、握有實權」之意的動詞。作者並未將他的統治美化為正當的王權。而這段時期只有三年。與士師記所記載的任何一段壓迫時期或士師的統治時期相比,這都算短暫。這意味著神的介入來得很快。

    23節是這一章的分水嶺。讓我們跟隨敘事的脈絡。在亞比米勒殺害兄弟、成為王的1至6節中,神的名字一次也沒有出現。在約坦呼喊的7至21節中,神的名字只透過他的口提到了兩次。而到了23節,神終於親自行動了。

    然而,這個行動與我們所期待的不同。在士師記中,神做工的方式有一定的模式。俄陀聶身上有耶和華的靈降臨(3:10),基甸披戴上耶和華的靈(6:34),日後耶弗他和參孫身上也曾降臨。那靈總是聚集分散的百姓、成就拯救的靈。然而,耶和華的靈並沒有降在亞比米勒身上。相反,神差來的是惡靈。而且,不是讓惡靈降在他身上,而是差在他與示劍之間。

    關於這惡靈的本質為何,學者們爭論紛紛。但經文的重點不在於它的本質。經文要說的很清楚:神打破了亞比米勒與示劍之間的關係,並使那破裂成為審判的手段。如果耶和華的靈是聚集人、成就拯救的靈,那麼在這裡,人與人之間的分裂,反倒成了報應的管道。

    士9:24 這是要叫耶路巴力七十個兒子所受的殘害歸與他們的哥哥亞比米勒,又叫那流他們血的罪歸與幫助他殺弟兄的示劍人。

    審判的根據出現了——無辜的血。而這節經文中,有一點不容忽視:血債並非只歸在亞比米勒一人身上。經文明確寫道:「歸與幫助他殺弟兄的示劍人。」不僅行惡的人,連那些出手相助的人,也一同要償還。

    士9:25 示劍人在山頂上設埋伏,窺探亞比米勒,凡從他們那裡經過的人,他們就搶奪。有人將這事告訴亞比米勒。

    惡靈被差來的結果由此開始展現。示劍人在山頂上埋伏人,搶劫路過的人。這不能單純視為一般的搶劫行為。那條路是亞比米勒的領土。此舉是向全世界宣告:統治者連自己土地上的一條路都守不住。三年前拿出七十塊銀子擁立他為王的正是這些人,如今卻在瓦解他的權威。

    這時,一個新人物登場了——以別的兒子迦勒。看看他登場的方式:帶著弟兄們來到示劍。與亞比米勒當初仰仗母舅親族登場的方式一模一樣。而示劍人這一次也是看人而動心。

    士9:27-28 就出城到田間去,摘葡萄,踹酒,設擺筵宴,進他們神的廟中吃喝,咒詛亞比米勒。28 以別的兒子迦勒說:亞比米勒是誰?示劍是誰?使我們服事他呢?他不是耶路巴力的兒子嗎?他的幫手不是西布勒嗎?你們可以服事示劍的父親哈抹的後裔。我們為何服事亞比米勒呢?

    看看地點——是神廟,正是亞比米勒當初取得王位資金的那座巴力比利土廟。王權開始的地方,如今那王卻在此受到咒詛。

    而迦勒的這番話,是今天經文中最具諷刺意味之處。他稱亞比米勒為「耶路巴力的兒子」。亞比米勒當王的根據是什麼?正是「我與你們是骨肉」這樣的血緣關係。然而迦勒卻舉起那血緣關係的另一半來攻擊他:你的父親終究不也是外人嗎?更甚者,他還提議乾脆去服事哈抹的後裔。哈抹是創世記34章中示劍的舊統治者,是迦南人。這等於是說,乾脆完全拋棄以色列的血統,回歸古老的迦南家族。這一句話,顯示出示劍離神有多麼遙遠。這個靠著自己所立的邏輯而成為王的人,如今正是被那同一套邏輯所攻擊。

    然而,示劍城內早已埋下了亞比米勒的人——就是城的官長西布勒。他悄悄將迦勒的話告訴亞比米勒,亞比米勒的軍隊便在夜間埋伏於田野之中。接下來的場景堪稱精彩絕倫。

    士9:36 迦勒看見那些人,就對西布勒說:看哪,有人從山頂上下來了。西布勒說:你看見山的影子,以為是人。

    西布勒在拖延時間。他說你看錯了,那是山影。就在迦勒被困在城門前爭辯之時,亞比米勒的軍隊逐漸逼近。當事情再也無法隱瞞的時候,西布勒才開口。

    士9:38 西布勒對他說:你曾說,亞比米勒是誰,叫我們服事他?你所誇的口在哪裡呢?這不是你所藐視的民嗎?你現在出去,與他們交戰吧!

    而結果卻十分空虛。迦勒還沒能好好一戰,便被擊退逃跑。他正是那個在宴席上誇口說「這民若歸我掌管,我就除掉亞比米勒」的人。到頭來,不過是聲音喧嚷、內裡空空的器皿罷了。

    然而故事並未就此結束。表面上看,迦勒被逐出去,事情似乎已經了結,但亞比米勒並沒有就此罷手。

    士9:42-43 次日,民出到田間,有人告訴亞比米勒。43 他就把他的人分作三隊,埋伏在田間,看見示劍人從城裡出來,就起來擊殺他們。

    第二天早晨,示劍人一如往常地出去田間。而就在那平凡的清晨,亞比米勒突襲了他們。

    在此,讓我謹慎地提出一點聯想。他的父親基甸也曾將三百人分成三隊,擊打米甸營(7:16)。作者是否有意造成這樣的呼應,我們無從得知。只是,同樣的方式,父親用來擊打外邦的壓迫者,兒子卻用來擊打那擁立自己為王的同族。

    士9:45 亞比米勒整天攻打城,將城奪取,殺了其中的居民,將城拆毀,撒上了鹽。

    關於撒鹽這個行為,有兩種解讀。一種認為這是咒詛的記號,使那地永遠不再生長任何東西;另一種則認為這是一種將那地徹底翻覆、終結一切的儀式。無論採取哪一種解讀,有一點是確定的:亞比米勒把那個曾擁立自己為王的城邑,連地都一併翻覆了。

    再想想約坦在基利心山上所喊的話:「願火從亞比米勒發出,燒滅示劍人和米羅眾人。」那話如今開始在此應驗。

    這段經文向我們展示的是這樣的信息:亞比米勒與示劍的同盟,是人所建立的政治聯合,是靠著七十塊銀子和血緣關係締結的聯盟。然而,打破這聯盟的,是神自己。而祂審判的方式令人驚訝——祂並沒有從外面差來仇敵,而是使彼此利用的人彼此毀滅。在士師記中,耶和華的靈原是聚集分散百姓、成就拯救的靈。然而在缺乏真實與公義所締結的聯合面前,分裂本身竟成了神的報應。

    今天讀這段經文時,長久縈繞在我心中的,是那些默默無名死去的人。亞比米勒為了成為王而精打細算,迦勒為了奪取那位置而精打細算,西布勒為了守住自己的地位而精打細算。三個人都各有各的算計,而在那算計之中,並沒有神的位置。然而,誰為那算計的代價付出了呢?是那天早晨一如往常出到田間的人們。他們不過是出去做一天的工作,卻死在那田裡;他們居住的城被拆毀,那地上撒滿了鹽。當然,經文並沒有說示劍人是無辜的——神明確指出,他們拿出七十塊銀子幫助了亞比米勒。所以他們受到報應,也是理所當然的。儘管如此,我的心仍然沉重,因為我看見一個人的貪慾,竟能翻覆多少人的日常生活。那麼我又如何呢?我也常在自己的位置上盤算著什麼——這樣做事情會成,那樣做形象會好,現在還是不要說這句話比較好。這些算計未必都出於惡意。只是,若問在那算計之中是否有神,我總是沒有把握。而更可怕的是,如果我算計的代價只由我一人承擔,那還只是我個人的事;但我所訂立的計劃、我所說的話,其代價卻可能要由眾聖徒一同承擔。牧者的罪之所以可怕,原因就在這裡——那不是獨自犯下、獨自承擔的罪。因此,今天在盤算任何事之前,願我先將那盤算擺在神面前……如此,願不致因我的緣故,使任何人平凡的一天崩塌毀壞,我懇切地如此禱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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