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 사사기 3:12–31
今日默想:士師記 3:12–31
제목 : 여호와께서 넘겨 주셨느니라
어제 읽은 옷니엘 이야기가 순환의 표준형이었다면, 오늘 에훗 이야기는 그 틀 위에 살이 붙은 첫 번째 변주다. 저자는 옷니엘에게 다섯 절을 주었는데 에훗에게는 열아홉 절(12–30절)을 준다. 옷니엘 이야기에 없던 대화와 세부 묘사와 유머와 풍자가 여기 다 들어 있다. 그런데 순환의 요소들은 여전히 제자리를 지킨다. 이스라엘이 또 악을 행했고, 여호와께서 에글론을 강성하게 하셨고, 이스라엘이 열여덟 해를 섬겼고, 이스라엘이 부르짖었고, 여호와께서 구원자를 세우셨고, 그 땅이 팔십 년 동안 평온했다. 이 요소들이 이야기의 앞과 뒤에 괄호처럼 놓여서 가운데의 사건을 감싼다. 그리고 그 괄호 안에서 이야기는 뒤집힌다. 시작에서는 모압이 이스라엘을 지배했는데, 끝에서는 이스라엘이 모압을 지배한다.
삿 3:12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므로 여호와께서 모압 왕 에글론을 강성하게 하사 그들을 대적하게 하시매
먼저 저자가 이 절에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다'를 두 번이나 쓴다는 것을 보아야 한다. 저자는 원인을 못 박고 있다. 에글론이 강해진 이유를 저자는 국제 정세나 모압의 군사력으로 설명하지 않고 이스라엘의 불순종으로 설명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파셨다'거나 '넘기셨다'고 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에글론을 '강성하게 하셨다'고 한다. 이 표현은 사사기에서 여기에만 나온다. 모압은 롯의 자손으로 이스라엘의 친족 나라였고, 광야 시절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모압 땅을 침범하지 말라고 하셨다(신 2:9). 그 땅을 롯 자손에게 기업으로 주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은 그 모압을 오히려 강하게 하셔서 이스라엘을 징계하는 도구로 쓰신다.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이 이제 그 땅 안에서 모압을 사용하시는 역전이다. 그리고 에글론이 점령한 곳이 종려나무 성읍, 곧 여리고 지역이다. 여호수아 시대에는 이스라엘이 요단을 건너 여리고를 점령했는데, 사사기에서는 모압이 요단을 건너 여리고 지역을 장악한다. 이스라엘이 정복의 첫 열매를 도로 빼앗긴 것이다. 압제는 옷니엘 때의 팔 년에서 열여덟 해로 늘었다.
삿 3:15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우셨으니 그는 곧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왼손잡이 에훗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그를 통하여 모압 왕 에글론에게 공물을 바칠 때에
이 절에는 저자의 말장난이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베냐민'은 문자 그대로 '오른손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지파에서 나온 구원자가 왼손잡이다. 히브리어로는 '오른손이 묶인 사람'이라는 뜻이다. 오른손이 불편했다는 뜻인지 왼손을 쓰도록 훈련받았다는 뜻인지 해석이 갈리지만, 사사기 20:16에서 같은 표현이 물매를 잘 던지는 베냐민 정예병 칠백 명에게 쓰이는 것을 보면 장애라기보다 왼손을 능숙하게 쓰는 전사의 특징으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다. 오른손의 아들 지파에서 왼손잡이가 나왔고, 그 왼손이 이스라엘을 구원한다. 에글론의 이름도 그렇다. '에글론'은 히브리 독자에게 '송아지'를 연상시키는 이름이고, 17절은 에글론이 '매우 비둔한 자'였다고 굳이 강조하는데 이 '비둔하다'는 창세기 41장의 살진 소에게도 쓰이는 말이다. 그래서 저자가 곧 칼에 쓰러질 에글론을 살진 짐승처럼 희화화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에훗은 한 규빗 길이의 양날 칼을 만들어 오른쪽 허벅지 옷 속에 찼다(16절). 통상적인 오른손잡이라면 왼쪽에 찼을 칼을 반대쪽에 숨긴 것이다. 본문은 몸수색이 있었는지 말하지 않지만, 에훗은 왼손잡이라는 자기 특징을 그대로 암살의 이점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에훗은 공물을 바치고 돌아가다가 '길갈 근처 돌 뜨는 곳'(19절)에서 되돌아온다. 원문은 '길갈에 있는 조각된 돌들'인데, 이 단어는 보통 새긴 우상을 뜻하기 때문에 채석장인지 우상들인지 해석이 갈리는 난해한 대목이다. 만일 이 길갈이 여호수아 시대의 길갈이라면 2:1에서 여호와의 사자가 올라온 그 자리와 연결되지만, 그것을 확정하기는 어렵다. 어쨌든 에훗은 거기서 돌아와 왕에게 은밀한 일이 있다고 하고, 왕은 신하들을 물린다.
삿 3:20 에훗이 그에게로 들어가니 왕은 서늘한 다락방에 홀로 앉아 있는 중이라 에훗이 이르되 내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어 왕에게 아뢸 일이 있나이다 하매 왕이 그의 좌석에서 일어나니
개역개정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어'로 옮겼지만 원문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에훗은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고 말하고, 그 말 다음에 말 대신 칼을 꺼낸다. 서사가 잔혹한 말장난처럼 진행되는 것이다. 문학적으로 보면 에훗의 그 칼이 에글론에게 전달된 심판의 메시지처럼 기능한다. 그리고 이 장면은 풍자로 가득하다. 신하들은 밖에서 왕이 볼일을 본다고 생각하며 민망할 때까지 기다리고, 그 사이 에훗은 문을 잠그고 빠져나갔다. 이스라엘을 열여덟 해 동안 짓누른 자가 이렇게 우스꽝스럽게 무너진다. 저자가 압제자를 조롱하는 이유가 있다. 그 압제자를 강하게 하신 이도 여호와시고, 그 압제자를 무너뜨리신 이도 여호와시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내가 가장 오래 머문 문장은 에훗이 왕궁을 빠져나온 뒤에 한 말이다.
삿 3:27–28 그가 이르러 에브라임 산지에서 나팔을 불매 이스라엘 자손이 산지에서 그를 따라 내려오니 에훗이 앞서 가며 28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따르라 여호와께서 너희의 원수들인 모압을 너희의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 하매 무리가 에훗을 따라 내려가 모압 맞은편 요단 강 나루를 장악하여 한 사람도 건너지 못하게 하였고
에훗은 방금 혼자서 모압 왕을 죽이고 나온 사람이다. 에훗이 칼을 직접 만들었고, 에훗이 계획을 직접 세웠고, 에훗이 왕궁에 직접 들어갔고, 에훗이 자기 왼손으로 직접 찔렀다. 이 승리에 에훗의 몫이 없다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에훗이 나팔을 불고 백성 앞에 서서 한 말은 "내가 에글론을 죽였다"가 아니다. "여호와께서 너희의 원수들인 모압을 너희의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이다. 물론 에훗은 "나를 따르라"고 말한다. 에훗은 지도자로서 앞장서는 것을 피하지 않는다. 그러나 에훗은 승리의 이유를 자기 이름으로 말하지 않는다. 옷니엘 이야기에서는 서술자가 "여호와께서 구산 리사다임을 그의 손에 넘겨 주시매"(3:10)라고 말했는데, 이번에는 사사 자신이 그 문장을 자기 입으로 백성에게 말한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백성이 요단 나루를 막아 모압 사람 만 명을 쳤다.
김지찬 교수는 이 장면을 입다 이야기와 대응시킨다. 에훗은 요단 나루를 장악해서 모압 사람을 막았는데, 입다는 요단 나루를 장악해서 동족 에브라임 사람 사만 이천 명을 죽인다(12:5–6). 같은 나루, 같은 방법인데 대상이 원수에서 형제로 바뀐다. 처음에는 이스라엘이 하나가 되어 대적을 차단하던 나루가 뒤에서는 동족을 죽이는 검문소가 된다. 사사기의 하강이 여기서도 보인다. 그러나 에훗의 자리에서는 아직 그렇지 않았다.
삿 3:30 그 날에 모압이 이스라엘 수하에 굴복하매 그 땅이 팔십 년 동안 평온하였더라
압제 열여덟 해 뒤에 평온 팔십 년이 왔다. 사사기에 명시된 평온 가운데 가장 길다. 12절에서 모압이 이스라엘을 대적했는데 30절에서 모압이 이스라엘 수하에 굴복한다. 그리고 31절에 삼갈이 한 절로 붙는다. 저자는 삼갈의 지파도, 이스라엘이 부르짖었다는 말도, 여호와의 영이 임했다는 말도 기록하지 않는다. 다만 삼갈이 소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육백 명을 죽였다고 하고, 옷니엘과 에훗에게 쓴 그 동사를 삼갈에게도 쓴다. "그도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더라." 저자가 삼갈의 배경을 거의 말하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가, 독자의 눈을 삼갈의 이력이 아니라 하나님이 삼갈을 통해 행하신 구원에 두게 한다. 에훗이 백성 앞에서 한 말이 바로 그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래 가나안 땅은 샬롬의 땅이다. 그 샬롬의 땅에 샬롬이 없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에서 '그 땅이 팔십 년 동안 평온하였더라'고 기록한다. 나의 삶 속에 이 평온함이 필요하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수많은 문제들로 인해 평온함이 없는 삶 속에서 오늘 이 말씀이 너무나 부럽다. 그렇기에 에훗처럼 온전히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들어내는 삶을 살아가기 소망한다. 그럴 때 하나님이 주시는 평온함이 내 삶 가운데 들어오길 기도한다.
標題:耶和華已將他們交在你們手中
昨天讀到的俄陀聶的故事若是循環模式的標準範本,那麼今天以笏的故事就是在這個框架上添加血肉的第一個變奏。作者只用了五節經文描寫俄陀聶,卻用了十九節經文(12–30節)描寫以笏。俄陀聶故事裡沒有的對話、細節描寫、幽默與諷刺,這裡全都具備。然而循環的各個要素依然各就其位。以色列人又行了耶和華眼中看為惡的事,耶和華使伊磯倫強盛,以色列人服事了十八年,以色列人呼求,耶和華興起了拯救者,那地太平了八十年。這些要素像括號一樣放在故事的前後,包裹著中間的事件。而在這括號之內,故事發生了逆轉。開始時是摩押轄制以色列,結尾時卻是以色列轄制摩押。
士 3:12 以色列人又行耶和華眼中看為惡的事,耶和華就使摩押王伊磯倫強盛,攻擊以色列人,因為他們行了耶和華眼中看為惡的事。
首先要留意,作者在這一節裡兩次寫到「行耶和華眼中看為惡的事」。作者正在釘定原因。伊磯倫得以強盛的緣由,作者不是用國際局勢或摩押的軍事實力來解釋,而是用以色列的悖逆來解釋。不過這一次,經文沒有說神「將以色列人賣了」或「交出」,而是說神使伊磯倫「強盛」。這個表達在士師記中僅此一見。摩押是羅得的後裔,是以色列的親族之國,曠野時期神曾吩咐以色列不可侵犯摩押之地(申2:9),因為那地是神賜給羅得後裔為業的。可如今神反倒使摩押強盛,用它作為懲治以色列的工具。曾引領以色列進入應許之地的神,如今卻在那地之中使用摩押,這是一個逆轉。而伊磯倫所佔領的,正是棕樹城,也就是耶利哥地區。約書亞時代是以色列過約旦河佔領耶利哥,而在士師記裡,卻是摩押過約旦河掌控了耶利哥地區。以色列征服所得的頭一批果實,如今又被奪回。壓迫的年日也從俄陀聶時期的八年,延長到十八年。
士 3:15 以色列人呼求耶和華的時候,耶和華就為他們興起一位拯救者,就是便雅憫人基拉的兒子,左手便利的以笏。以色列人託他送貢物給摩押王伊磯倫。
這一節極有可能包含作者的文字遊戲。「便雅憫」字面意思就是「右手之子」。然而從這支派中興起的拯救者,卻是個左撇子。希伯來原文的意思是「右手受縛之人」。這究竟是指右手有殘疾,還是指受過訓練慣用左手,解釋上有分歧;但參照士師記20:16同樣的表達用在七百名擅長投石、精銳善戰的便雅憫兵身上,便可看出這與其說是殘疾,不如說是形容一位嫻熟使用左手的戰士的特徵。從「右手之子」的支派中,竟出了一個左撇子,而正是這隻左手,拯救了以色列。伊磯倫的名字也是如此。「伊磯倫」這個名字會讓希伯來讀者聯想到「牛犢」,而第17節特意強調伊磯倫是個「極肥胖的人」,這個「肥胖」一詞在創世記41章也用來形容肥壯的牛。因此可以推斷,作者正把即將倒在刀下的伊磯倫,漫畫式地比作一隻肥壯的牲畜。
以笏打造了一把一肘長的兩刃劍,藏在右腿的衣服底下(16節)。若是尋常的右撇子,原本該把劍佩在左邊,他卻反其道而行,把劍藏在對側。經文沒有交代是否經過搜身,但以笏把自己左撇子的特徵,直接轉化成了行刺的優勢。以笏獻上貢物之後在歸途中,行到「吉甲附近鑿石之地」(19節)便折返回去。原文是「吉甲的雕刻石像」,這個詞通常是指雕刻的偶像,因此究竟是採石場還是偶像,是個難以定論的難解之處。倘若這個吉甲就是約書亞時代的那個吉甲,便與2:1耶和華的使者上來之處相連,但這一點難以確定。無論如何,以笏從那裡折返,對王說有一件機密的事要稟告,王便叫左右的人退下。
士 3:20 以笏來到王面前;王獨自一人坐在涼樓上。以笏說:「我有神的話要告訴王。」王就從座位上站起來。
和合本譯作「奉神的命」,但原文其實是「神的話」。以笏說有神的話,話音落下之後,他拔出的不是言語,而是刀。敘事就這樣以一種殘酷的雙關語方式展開。從文學角度看,以笏的那把刀彷彿成了傳達給伊磯倫的審判信息。而這一幕充滿了諷刺。臣僕們在外面等候,以為王在如廁,一直等到覺得尷尬為止,而在那段時間裡,以笏已經鎖上門逃脫了。那個轄制以色列十八年之久的人,就這樣以如此滑稽的方式垮台了。作者之所以嘲諷這個壓迫者,是為了彰顯:使這壓迫者強盛的是耶和華,使這壓迫者傾覆的也是耶和華。
然而在今天的經文中,我停留最久的,是以笏逃出王宮之後所說的一句話。
士 3:27–28 他來到以法蓮山地,就吹角;以色列人隨著他從山地下來,他在前頭引路, 28 對他們說:「你們隨我來,因為耶和華已經把你們的仇敵摩押人交在你們手中了。」於是他們跟著他下去,把守約旦河的渡口,不容摩押一人過去。
以笏方才是隻身殺了摩押王之後才出來的人。是以笏親手打造那把劍,是以笏親自策劃這個計謀,是以笏親自進入王宮,是以笏用自己的左手親自行刺。沒有人能說這場勝利裡沒有以笏的功勞。然而當以笏吹角、站在百姓面前時,他所說的並不是「我殺了伊磯倫」,而是「耶和華已經把你們的仇敵摩押人交在你們手中了」。當然,以笏也說了「你們隨我來」。作為領袖,以笏毫不迴避走在前頭。但他並沒有把得勝的緣由歸在自己名下。在俄陀聶的故事裡,是敘述者說「耶和華將古珊利薩田交在他手中」(3:10);而這一次,是士師自己親口向百姓說出了這句話。百姓聽了這話,便把守約旦河渡口,擊殺了摩押人約一萬人。
金志燦教授將這一幕與耶弗他的故事相互對應。以笏把守約旦河渡口攔阻摩押人,而耶弗他卻在同一渡口擊殺了自己的同胞以法蓮人四萬二千人(12:5–6)。同樣的渡口,同樣的方法,對象卻從仇敵變成了弟兄。起初是以色列同心協力攔阻敵人的渡口,後來卻成了殺害同胞的關卡。士師記的下滑軌跡在這裡也可見一斑。然而在以笏的時代,還未曾如此。
士 3:30 這樣,摩押就被以色列制伏了。國中太平了八十年。
十八年的壓迫之後,迎來了八十年的太平。這是士師記中明確記載的太平年日中最長的一段。第12節說摩押攻擊以色列,到第30節卻是摩押被以色列制伏。第31節則以一節經文附帶提到珊迦。作者沒有記載珊迦的支派,也沒有說以色列人呼求,也沒有說耶和華的靈降臨在他身上。只說珊迦用趕牛的棍子打死了六百個非利士人,並且把用在俄陀聶和以笏身上的那個動詞,也用在了珊迦身上:「他也拯救了以色列。」作者幾乎不交代珊迦的背景,這個事實本身,正是要讓讀者的目光,不落在珊迦的履歷上,而落在神藉著珊迦所成就的拯救上。以笏在百姓面前所說的那句話,正指向這同一個方向。
是的,迦南地是平安(沙龍)之地。而這片平安之地失去平安的原因,正是因為沒有全心全意事奉神。今天的經文記載:「國中太平了八十年。」我的生命中,正需要這樣的平安。因著眾多我無力承擔的問題而失去平安的生活裡,今天這句話讓我格外羨慕。因此我盼望能像以笏一樣,過一種全心尊崇神、彰顯神作為的生活。惟願如此,神所賜的平安,能臨到我的生命之中,這是我的禱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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