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 사사기 17:1–13
今日默想:士師記17:1–13
제목 : 여호와께서 내게 복 주실 줄을 아노라
어제 우리는 삼손 네러티브의 마지막을 읽었다. 이로써 사사기에 나오는 사사들의 이야기는 모두 마무리 되었다. 그런데 사사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오늘부터 성경은 사사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한 평범한 집안을 보여 준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지금까지 반복되던 그 순환, 곧 백성이 범죄하고 압제를 당하고 부르짖으면 하나님이 구원자를 보내시던 일이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백성은 부르짖지 않고, 사사도 오지 않는다. 문제 많은 사사들 아래서 살아온 백성이 어떤 모습이 되었는지, 성경은 이제 그것을 보여 주려는 것이다.
에브라임 산지에 미가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여호와와 같은 이가 누구냐'라는 뜻이다. 그런데 그는 어머니의 은 천백을 훔쳤다. 들릴라가 삼손을 넘겨주고 블레셋 방백들에게 받기로 한 바로 그 액수다. 어머니가 도둑을 저주하는 말을 그가 듣는다. 그리고서야 그 은이 자기에게 있다고 고백한다. 그러자 어머니는 오히려 "내 아들이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라고 축복한다. 그다음이 문제다.
삿 17:3 미가가 은 천백을 그의 어머니에게 도로 주매 그의 어머니가 이르되 내가 내 아들을 위하여 한 신상을 새기며 한 신상을 부어 만들기 위해 내 손에서 이 은을 여호와께 거룩히 드리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제 이 은을 네게 도로 주리라
이 본문을 잘 보면 이 어머니는 바알을 부르지 않았다. 여호와의 이름으로 아들을 축복했고, 그 은을 여호와께 거룩히 드린다고 했다. 그런데 그 거룩히 드린 은으로 신상을 만든다. 그리고 그 신상은 하나님의 집이 아니라 미가의 집에 놓인다. 미가는 자기 집에 신당을 차리고 에봇과 드라빔을 만들고, 자기 아들 하나를 세워 제사장으로 삼는다. 생각해 보라. 이름이 '여호와와 같은 이가 누구냐'인 사람이 자기 손으로 여호와의 신상을 만들어 자기 집에 모신 것이다. 그래 이 집에서 여호와의 이름은 사라지지 않았다. 여호와의 이름은 그대로 남아 있는데, 그분을 섬기는 방법을 자기 마음대로 다시 만든 것이다. 그리고 성경은 이 모든 일을 한 문장으로 설명한다.
삿 17:6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이 문장은 사사기의 마지막 다섯 장을 여는 문장이다. 그리고 사사기는 마지막 절에서 이 문장을 그대로 다시 말하며 끝을 맺는다. 그러니 이것이 사사기가 그 시대를 향해 내리는 결론인 셈이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라는 말은 원문에서 '자기 눈에 옳은 대로'다. 삼손이 딤나의 여인을 두고 "그가 내 눈에 옳다"고 했던 바로 그 말이다. 한 사람의 삶의 기준이었던 것이 이제 온 이스라엘의 시대정신이 된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일찍이 모세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들어갈 땅에서는 '각기 소견대로 하지 말라'고(신 12:8), 하나님이 택하신 곳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예배하라고(신 12:5). 그런데 미가는 그 말씀을 하나하나 거꾸로 행한다. 자기 집에 성소를 세우고, 자기 신상을 만들고, 자기 제사장을 세운다. 그렇다면 이 시대의 문제는 단지 사람 왕이 없었다는 데 있는가. 아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누구도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그때 유다 베들레헴의 한 레위 청년이 머물 곳을 찾아 떠돌다 미가의 집에 이른다. 미가는 그에게 해마다 은 열과 옷 한 벌과 먹을 것을 주겠다며 자기 제사장이 되어 달라고 한다. 청년은 그 조건에 만족해 그 집에 들어간다. 잘못된 예배를 바로잡아야 할 사람이, 오히려 그 예배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얻은 것이다. 그리고 미가가 말한다.
삿 17:13 이에 미가가 이르되 레위인이 내 제사장이 되었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내게 복 주실 줄을 아노라 하니라
이 장은 어머니가 아들에게 여호와의 복을 빌어 주는 말로 시작해서, 아들이 여호와의 복을 확신하는 말로 끝난다. 그곳에서 미가는 이제 안다고 말한다. 무엇을 아는가. 신상도 있고, 에봇과 드라빔도 있고, 이제 레위인 제사장까지 있으니 여호와께서 자신을 잘되게 하실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 장 어디에서도 미가는 여호와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묻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에게 레위인은 하나님의 뜻을 듣게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복을 보장해 주는 장치였다. 그래 미가의 문제는 하나님을 몰랐다는 데 있지 않다. 잘못 알면서 이제는 확실히 안다고 말하는 데 있다. 이러한 잘못된 앎이 그 신앙을 더욱 하나님과 상관 없는 모습으로 변질시켜간다.
그래 미가는 여호와 하나님을 버린 사람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여호와의 이름을 너무 많이 말했다. 축복할 때도, 은을 드릴 때도, 제사장을 세울 때도 그는 여호와를 불렀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자기 눈에 옳은 대로 만들었다. 그렇기에 오늘 본문은 모든 것을 여호와의 이름으로 행하지만 그 모든 것이 여호와의 뜻과는 상관없는 일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오늘 이 본문을 읽으며 나는 미가의 집에서 오늘의 현시대의 교회들을 돌아본다. 지금 우리시대의 교회에서도 수없이 반복되는 실수가 바로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예배의 모양을 갖추고, 사역자를 세우면 하나님이 복을 주실 것이라 확신하는 것... 그러나 교회가 하나님의 뜻을 묻는 곳이 아니라 복을 얻어 내는 곳이 되어 버리면, 그것은 미가의 신당과 다를 바가 없다. 하나님의 이름을 붙였을 뿐, 결국 내 눈에 옳은 대로 만든 우상숭배이 되어리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우리는 교회에서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있는가. 그리고 그 말씀에 순종하고 있는가. 나 역시 목사로서 예배와 사역의 모양을 갖추는 일에는 마음을 쏟으면서, 정작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묻는 일은 뒤로 미루지 않았는지 돌아본다. 그래 이번 수련회 기간이 또 하나의 행사가 아니라, 우리가 아는 하나님이 정말 성경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인지, 우리가 그 말씀 앞에 정말 순종하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시간이 되기를... 그리고 이어지는 오늘 주일 하루도 온 성도들이 복을 구하러 나오는 날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앞에 다시 서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날이 되기를 기도한다.
標題:我現在知道耶和華必賜福與我
昨天我們讀了參孫故事的結尾。至此,士師記中士師們的故事都已告一段落。然而士師記並未就此結束。從今天開始,聖經所呈現的不再是某位士師,而是以色列中一個平凡的家庭。而且從此以後,過去不斷重複的那個循環——百姓犯罪、受欺壓、呼求,神便興起拯救者——不再出現了。百姓不再呼求,士師也不再到來。聖經現在要展現的,是在那些問題重重的士師治理之下,百姓究竟變成了什麼樣子。
以法蓮山地有一個人名叫米迦。他的名字意思是「誰像耶和華」。然而他卻偷了母親的一千一百舍客勒銀子。這正是大利拉出賣參孫時,非利士首領們承諾要給她的那個數目。他聽見母親咒詛偷銀子之人的話,這才承認銀子在自己手上。母親卻反倒祝福他說:「願耶和華賜福與我兒。」問題就出在接下來的事。
士17:3 米迦就把這一千一百舍客勒銀子還給他母親。他母親說:「我分別為聖,從我手中將這銀子獻給耶和華,為我兒子雕刻一個像,鑄成一個像,所以我現在要還給你。」
仔細看這段經文,就會發現這位母親並沒有呼求巴力。她是奉耶和華的名祝福兒子,也說要將這銀子分別為聖獻給耶和華。然而,她卻用這獻為聖的銀子鑄造了偶像。而且這偶像並沒有被安放在神的殿中,而是放在米迦自己家裡。米迦在自己家中設立神堂,製作以弗得和家中的神像(德拉芬),又立自己的一個兒子作祭司。想想看,一個名叫「誰像耶和華」的人,竟親手打造耶和華的像,供奉在自己家中。是的,這個家中耶和華的名並沒有消失,耶和華的名依然存留,但人卻按自己的心意,重新發明了敬拜祂的方式。聖經用一句話總結了這一切。
士17:6 那時以色列中沒有王,各人任意而行。
這句話開啟了士師記最後五章的篇幅,而士師記也在最後一節再次原封不動地重複這句話作為結尾。所以,這可說是士師記對那個時代所下的結論。「任意而行」這句話,在原文中是「各人照自己眼中看為對的去行」。這正是參孫談論亭拿女子時所說「她在我眼中是好的」那句話。曾經只是一個人生活準則的話,如今竟成了全以色列的時代精神。然而神早已藉著摩西吩咐說:在你們將要進入的那地,「不可照自己眼中看為對的去行」(申12:8),要在耶和華所選定的地方,照耶和華所吩咐的敬拜祂(申12:5)。然而米迦卻將這話一條一條地反著做:在自己家中設立聖所,打造自己的神像,立自己的祭司。那麼,這個時代的問題,僅僅在於沒有人間的王嗎?不是的。更根本的問題在於,沒有人將神的話當作準則。
這時,猶大伯利恆有一個利未青年四處漂泊尋找棲身之所,來到了米迦家。米迦對他說,願意每年給他十舍客勒銀子、一套衣服和食物,請他作自己的祭司。這青年滿足於這樣的條件,便住進了這家。本該糾正錯誤敬拜的人,反而走進了那錯誤的敬拜之中,謀得了一席之地。於是米迦說:
士17:13 米迦說:「現在我知道耶和華必賜福與我,因我有一個利未人作祭司。」
這一章以母親為兒子祈求耶和華賜福開始,以兒子確信耶和華必賜福結束。在這裡,米迦說「現在我知道」。他知道什麼呢?他知道自己有了神像,有了以弗得和家中的神像,如今又有了利未人作祭司,耶和華必會使他亨通。然而,這一章裡,米迦從頭到尾都沒有問過耶和華真正想要的是什麼。因此,對他而言,這位利未人並不是使他聽見神心意的人,而不過是一個保證賜福的工具罷了。所以米迦的問題,並不在於他不認識神,而在於他明明認識錯了,卻說自己現在確實知道了。這種錯謬的「知道」,使他的信仰越來越變質,與神毫不相干。
是的,米迦並不是一個離棄耶和華神的人。恰恰相反,他太頻繁地呼求耶和華的名了。祝福的時候呼求耶和華,奉獻銀子的時候呼求耶和華,立祭司的時候也呼求耶和華。然而,他卻把這一切都按照自己眼中看為對的方式造出來了。因此,今天這段經文所要顯明的,正是:人可以凡事都奉耶和華的名去做,但這一切卻可能與耶和華的旨意毫無關係。
讀著今天這段經文,我從米迦的家中回望我們這個時代的教會。因為在我們這個時代的教會裡,同樣的錯誤也在無數次地重演——呼求耶和華的名,具備敬拜的外在形式,設立事工人員,就確信神必賜福……然而,當教會不再是尋問神心意的地方,反倒成了索取祝福的地方時,那便與米迦的神堂無異。只不過冠上了神的名字,實際上卻是按自己眼中看為對的方式打造出來的偶像崇拜罷了。所以今天我們當捫心自問:我們在教會中,是否真正認識神?是否真正順服祂的話語?身為牧者的我,也要反省自己:是否過於在意敬拜與事工的外在形式,卻把尋問神真正心意這件事一再推遲、擱置一旁。願這次的退修會期間,不只是又一場活動而已,而是成為一段省察的時間——省察我們所認識的神,是否真是聖經所見證的那位神;省察我們在祂的話語面前,是否真正地順服。也願接下來的今天主日,全體會眾不是來求取祝福的一天,而是重新站立在神的話語面前,並順服那話語的一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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