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목록
    Devotion · 默想

    오늘의 묵상 : 야고보서 4:13–5:6

    今日默想:雅各書 4:13–5:6

    한경우··조회 78

    제목 : 주의 뜻이면

    어제 우리는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는 말씀을 읽었다. 그리고 형제를 판단하는 사람에게 '너는 누구이기에'라고 묻는 야고보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야고보는 교만의 얼굴을 두 가지 더 보여 준다. 두 장면 모두 같은 말로 시작한다. '들으라'.

    약 4:13–14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첫 번째 '들으라'는 상인들을 향한다. 언제 떠나 어느 도시로 갈지, 얼마나 머물고 얼마를 벌지까지 계획이 빈틈없다. 그런데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야고보는 계획을 세우는 것 자체를 꾸짖지 않는다. 지혜롭게 미리 준비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문제는 그 계획 어디에도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는 것이다. 그들은 일 년을 자기 것처럼 계산했지만, 정작 내일 하루도 그들의 손에 있지 않았다. 그래서 야고보는 묻는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그리고 곧바로 답한다.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다. 아침에 짙게 깔렸다가 해가 뜨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그 안개 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

    약 4:15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여기서 '주의 뜻이면'은 말끝마다 붙이는 주문이 아니다. 한 종교개혁자의 말처럼, 그 말을 빠뜨렸다고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입술의 형식이 아니라 마음의 태도다. 그리고 이 문장을 잘 보면 하나님의 뜻에 달린 것이 두 가지다. '살기도 하고', 그리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내가 무엇을 하느냐뿐 아니라 내일 살아 있느냐조차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그것을 알면서도 허탄한 자랑을 한다(16절). 그래서 야고보는 이렇게 덧붙인다.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17절). 몰라서 짓는 죄가 아니라 알면서도 하지 않는 죄다. 그리고 이 한 문장이 다음 단락으로 이어진다.

    두 번째 '들으라'는 부자들을 향한다.

    약 5:1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으로 말미암아 울고 통곡하라

    어제 4:9에서도 야고보는 '울지어다'라고 했다. 그러나 그 울음은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부름이었고, 그 끝에는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는 약속이 있었다. 오늘의 울음은 다르다. '통곡'은 구약의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심판 앞에 선 사람들의 울음을 말할 때 쓰던 말이다. 야고보는 지금 이웃을 착취하며 살아가는 부자들에게 닥칠 심판을 선언하고 있다. 그러니 그들의 형편은 부러워할 일이 아니라 두려워할 일이다.

    야고보는 그들의 재물이 썩고, 옷이 좀먹고, 금과 은이 녹슬었다고 한다(2–3절). 사람들이 가장 오래 남으리라 믿는 금과 은조차 여기서는 썩어 가는 것들 사이에 놓인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인가. 재물을 가진 것 자체가 아니다. 써야 할 곳에 쓰지 않고 쌓아 두다가 썩힌 것이다. 하나님은 금을 녹슬게 하고 옷을 좀먹게 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다. 사람의 삶을 돕도록 주셨다. 그런데 나누어야 할 것을 움켜쥐고 쌓아 두었으니, 그 녹이 오히려 그들을 고발하는 증거가 된다. 그것도 '말세에', 곧 끝을 향해 가는 세상에서 말이다.

    그리고 야고보는 그 재물이 어디서 왔는지를 드러낸다.

    약 5:4 보라 너희 밭에서 추수한 품꾼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 그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

    율법은 품꾼의 삯을 해가 지기 전에 주라고 명했다(신 24:15). 그날 삯을 받지 못하면 그날 저녁 식구들이 굶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자들은 그 삯을 주지 않았다. 그러자 떼인 삯이 소리 지르고, 추수한 자들의 울음이 하나님께 들렸다. 아벨의 피가 땅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었던 것처럼, 사람들 사이에 묻혀 버린 불의도 하나님 앞에서는 침묵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울음을 들으신 분은 '만군의 주'시다. 이사야의 포도원 노래에서 정의를 바라셨으나 도리어 부르짖음을 들으셨던 바로 그 만군의 여호와시다. 하늘 군대를 거느리신 분이 가장 힘없는 품꾼의 울음에 귀를 기울이신다.

    그런데도 부자들은 땅에서 사치하고 방종하여 '살륙의 날에' 마음을 살찌웠다(5절). 도살될 날도 모른 채 먹고 살찌는 짐승처럼, 그들은 스스로 안전해지고 있다고 여겼지만 실은 심판의 날을 향해 가고 있었다. 다른 사람의 고통 위에서 누린 풍요는 안전의 증거가 아니라 심판의 이유였다.

    그리고 야고보는 이렇게 고발을 마친다.

    약 5:6 너희는 의인을 정죄하고 죽였으나 그는 너희에게 대항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부자들은 법정을 이용해 힘없는 의인을 정죄했고, 삯을 빼앗아 그의 생계를 끊었다. 그런데 그 의인은 맞서지 않았다. 아니, 맞설 힘이 없었다. 이 문장을 피해자에게 '잠잠히 참으라'는 명령으로 읽으면 안 된다. 이것은 무력한 사람을 짓밟은 자들의 죄를 고발하는 말이다.

    그런데 여기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5:6의 '대항하다'는 원문에서 안티타쏘(ἀντιτάσσω)라는 말이다. 어제 읽은 4:6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의 '물리치다'가 바로 이 말이다. 우리말 성경에서는 '물리치시고'와 '대항하지'로 다르게 옮겨 두 구절의 연결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두 구절을 나란히 놓으면 이렇다. 의인은 교만한 부자에게 맞서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교만한 자에게 맞서신다. 사람이 맞서지 못하는 그 자리에 하나님이 계신다. 그래, 사람의 무력함은 하나님의 무관심을 뜻하지 않는다.

    오늘 이 본문 앞에서 나를 돌아본다. 사실 나는 계획을 잘 세우지 않는 사람이다. (요즘 말로 하면 MBTI의 J가 아니라 P다.) 그래서 처음에는 오늘 말씀이 나와는 조금 거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일 년 뒤의 이익까지 계산하는 상인들처럼 살지는 않으니까. 오히려 나는 계획을 세우지 않는 대신 '주님 뜻대로 살지요'라고 말하곤 했다. 그런데 그것이 정말 주님 뜻대로 사는 것이었을까. 솔직히 돌아보면, 입으로는 '주님 뜻대로'라고 하면서 실제로는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 때가 많았다. 하기 싫은 일 앞에서는 아직 주님 뜻을 모르겠다며 미루고, 하고 싶은 일 앞에서는 주님이 열어 주신 길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런데 야고보는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고 말한 뒤 이렇게 덧붙인다.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그렇다. 주의 뜻대로 사는 삶은 말로 증명되지 않는다. 선을 행하는 삶으로 드러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어쩌면 나의 '주님 뜻대로'는 내일을 하나님께 맡기는 믿음이 아니라, 내 뜻대로 살기 위한 핑계였는지도 모른다. 그래, '주의 뜻이면'은 내 뜻을 감싸는 포장이 아니라, 오늘 마땅히 행해야 할 선을 행하는 삶의 고백이다. 그래서 오늘 다시 고백한다. '주의 뜻이면...' 그 고백이 핑계가 아니라 순종이 되기를...

    中文 AI翻譯

    標題:主若願意

    昨天我們讀到「神阻擋驕傲的人,賜恩給謙卑的人」這段話語,也聽見雅各向論斷弟兄的人發問:「你是誰?」而在今天的經文中,雅各又讓我們看見驕傲的另外兩副面孔。這兩個場景都以同一句話開頭:「嗐!」(原文意為「聽啊!」)

    雅 4:13–14 嗐!你們有話說:「今天、明天我們要往某城裡去,在那裡住一年,做買賣得利。」14 其實明天如何,你們還不知道。你們的生命是什麼呢?你們原來是一片雲霧,出現少時就不見了。

    第一個「聽啊」是對商人說的。何時出發、往哪座城去、要住多久、能賺多少,計畫得滴水不漏。但我們不可誤會:雅各並不是在責備訂定計畫這件事本身。智慧地預先準備並沒有錯。問題在於,那計畫裡完全沒有神的位置。他們把一整年都當作自己的來盤算,然而事實上,連明天一天都不在他們手中。所以雅各問:你們的生命是什麼呢?接著立刻回答:是出現少時就不見的雲霧。就是那清晨濃濃瀰漫、太陽一出來便消失得無影無蹤的霧氣。

    那麼,應當怎麼說呢?

    雅 4:15 你們只當說:「主若願意,我們就可以活著,也可以做這事,或做那事。」

    這裡的「主若願意」,並不是每句話結尾都要加上的咒語。正如一位宗教改革家所說,漏講了這句話,也不必因此產生罪疚感。重要的不是嘴上的形式,而是內心的態度。仔細看這句話,取決於神旨意的有兩件事:「可以活著」,以及「做這事,或做那事」。不只是我要做什麼,就連我明天是否還活著,都在神的手中。然而他們明明知道,卻仍然張狂誇口(16節)。所以雅各又補上一句:「人若知道行善,卻不去行,這就是他的罪了。」(17節)這不是因無知而犯的罪,而是明知卻不去行的罪。而這句話,又連接到下一段。

    第二個「聽啊」是對富足人說的。

    雅 5:1 嗐!你們這些富足人哪,應當哭泣、號咷,因為將有苦難臨到你們身上。

    昨天在4:9,雅各也說了「要哭泣」。但那哭泣是呼喚人歸向神,結尾還有「主就必叫你們升高」的應許。今天的哭泣則不同。「號咷」是舊約先知描述人站在神審判面前的哭聲時所用的字。雅各此刻是在宣告:那些剝削鄰舍度日的富人,審判即將臨到他們。所以他們的處境不是值得羨慕的,而是令人畏懼的。

    雅各說,他們的財物壞了,衣服被蟲子咬了,金銀都長了鏽(2–3節)。連人們認為最能長存的金銀,在這裡也被放在朽壞之物當中。那麼問題出在哪裡?不在於擁有財物本身,而在於該用的地方不用,一味積攢直到朽壞。神賜下金子,不是要讓它生鏽;賜下衣服,不是要讓蟲蛀。神賜下這些,是要幫助人的生活。然而他們把該分享的緊緊抓住、囤積起來,那鏽反倒成了控告他們的證據。而且是「在這末世」,也就是在這走向終局的世界中。

    接著,雅各揭露了那些財物從何而來。

    雅 5:4 工人給你們收割莊稼,你們虧欠他們的工錢;這工錢有聲音呼叫,並且那收割之人的冤聲已經入了萬軍之主的耳了。

    律法吩咐要在日落以前把工錢給雇工(申24:15)。因為若當天拿不到工錢,那天晚上一家人可能就要挨餓。但富人卻不給工錢。於是被扣的工錢在呼叫,收割之人的哭聲傳到了神那裡。正如亞伯的血從地裡向神哀告,在人群中被埋沒的不義,在神面前也不會沉默。而聽見這哭聲的,是「萬軍之主」。就是以賽亞葡萄園之歌中,盼望公平、卻聽見冤聲的那位萬軍之耶和華。統管天軍的那一位,側耳傾聽最無力的雇工的哭聲。

    即便如此,富人仍在世上享美福、好宴樂,「當宰殺的日子」嬌養自己的心(5節)。就像不知宰殺之日將至、只顧吃喝長肥的牲畜,他們以為自己越來越安穩,其實卻正走向審判的日子。建立在他人痛苦之上的富足,不是平安的證據,而是審判的理由。

    最後,雅各這樣結束他的控訴:

    雅 5:6 你們定了義人的罪,把他殺害,他也不抵擋你們。

    富人利用法庭定無力之義人的罪,奪走他的工錢,斷了他的生計。而那義人沒有抵擋。不,是沒有抵擋的力量。我們不可把這句話讀成要受害者「默默忍耐」的命令。這是在控訴那些踐踏無力之人者的罪。

    然而這裡有一點不可錯過。5:6的「抵擋」,原文是 antitassō(ἀντιτάσσω)。昨天讀的4:6「神阻擋驕傲的人」中的「阻擋」,正是這個字。韓文聖經將兩處分別譯為不同的詞,使兩節經文的連結不太容易看出來。但若把兩節並列,意思就是:義人無法抵擋驕傲的富人,但神卻抵擋驕傲的人。在人無力抵擋之處,有神在那裡。是的,人的無力,並不代表神的漠不關心。

    今天站在這段經文面前,我反省自己。其實我是個不太訂計畫的人。(用現在的話說,MBTI不是J而是P。)所以一開始我覺得今天的話語跟我有點距離,畢竟我並不像那些連一年後的利潤都要算好的商人那樣生活。反倒是,我不訂計畫,卻常說「照主的旨意過日子吧」。但那真的是照主的旨意生活嗎?老實回想,我常常嘴上說「照主的旨意」,實際上卻只做自己想做的事。面對不想做的事,就說還不明白主的旨意而一再拖延;面對想做的事,就說這是主開的路。然而雅各在說了「主若願意,我們就可以活著,也可以做這事,或做那事」之後,又加上一句:「人若知道行善,卻不去行,這就是他的罪了。」是的,照主旨意而活的生命,不是用言語證明的,而是在行善的生活中顯明出來。從這個角度來看,也許我的「照主的旨意」,並不是把明天交託給神的信心,而是為了照自己意思而活的藉口。是的,「主若願意」不是包裝自己心意的外衣,而是今天去行當行之善的生命告白。所以今天我再次告白:「主若願意……」願這告白不是藉口,而是順服……

    댓글 / 留言 (0)

    로딩 중...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 留言需要先登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