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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votion · 默想

    오늘의 묵상 : 야고보서 1:12-18

    今日默想:雅各書 1:12-18

    한경우··조회 51

    제목 : 빛들의 아버지

    어제 우리는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는 말씀으로 야고보서를 시작했다. 시험은 믿음이 진짜임을 드러내고, 인내를 거쳐 우리를 온전하게 한다고 했다. 오늘 야고보는 그 이야기를 이어 간다.

    약 1: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시련을 견디어 낸 자'는 원문에서 '검증을 통과하여 인정받은 자'라는 뜻이다. 어제 본 도가니를 떠올리면 된다. 불을 지나온 금이 진짜 금으로 인정받는 것처럼, 시련을 견딘 사람에게 생명의 면류관이 주어진다. 면류관이 따로 있고 생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생명 그 자체가 면류관이다. 그런데 야고보는 그 사람을 '주를 사랑하는 자들'이라고 부른다. 결국 시험을 참는 사람과 주를 사랑하는 사람은 같은 사람이다. 그러니 인내는 하나님과 상관없이 이를 악물고 버티는 일이 아니다. 시련 한가운데서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놓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다음 절에 가면 같은 '시험'이라는 말이 다른 뜻으로 쓰인다.

    약 1:13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여기를 잘 봐야 한다. 우리말 성경은 2절과 13절을 모두 '시험'이라고 옮겼고, 원문에서도 같은 뿌리의 말이다. 하지만 2절의 시험은 믿음을 단련하는 테스트이고, 13절의 시험은 죄로 끌어당기는 유혹이다. 그래서 영어 성경은 2절을 시련(trial)으로, 13절을 유혹(tempt)으로 나누어 옮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신 일도 테스트였다. 아브라함을 넘어뜨리시려는 것이 아니라 그의 믿음이 진짜임을 드러내시려는 것이었다. 반면 유혹은 사람을 무너뜨리려고 죄 쪽으로 끌어당긴다. 하나님은 악에 흔들리지 않으시는 분이기에, 결코 아무도 악으로 꾀지 않으신다.

    그런데 문제는 이 둘이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성령에게 이끌리어 광야로 가셨고, 바로 그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다. 하나님 편에서는 테스트였던 그 자리가 마귀 편에서는 유혹이었다. 우리의 시련도 그렇다. 하나님은 그 시련으로 내 믿음을 단련하시려는데, 내 안의 욕심은 바로 그 시련을 핑계 삼아 나를 죄 쪽으로 끌어당긴다. 그러고는 넘어졌을 때 이렇게 말하고 싶어진다. '하나님이 나를 이 자리에 두셨으니, 내가 이렇게 된 것도 결국 하나님 때문 아닌가.' 야고보가 막는 것이 바로 이 말이다. 테스트는 하나님이 하셨지만, 유혹에 넘어지는 책임까지 하나님께 돌릴 수는 없다.

    그렇다면 유혹은 어떻게 사람을 넘어뜨리는가.

    약 1:14-15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야고보는 유혹이 어디에서 오는지 우리 안을 보게 한다. 바로 자기 욕심이다. '끌려'와 '미혹됨'은 원문에서 사냥과 낚시에 쓰던 말이다. 미끼를 단 바늘이 물고기를 꾀어 끌고 가듯, 욕심이 사람을 꾀어 끌고 간다. 그리고 야고보는 비유를 출산으로 바꾼다.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고, 그 죄가 다 자라면 사망을 낳는다. 처음에는 욕심 하나쯤 대수롭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그 안에 이미 죄의 씨가 있고, 내버려 두면 끝내 죽음에 이른다. 그렇다고 고난 당하는 사람에게 '그것도 네 욕심 때문'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야고보가 말하는 것은 고난의 원인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 악으로 기울어지는 내 마음의 출처다.

    그래서 야고보는 '속지 말라'고 한다. 하나님이 나를 악으로 시험하신다고 생각한다면, 이미 속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에게서 오는 것은 악이 아니라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

    약 1:17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빛들의 아버지'는 해와 달과 별을 지으신 창조주라는 뜻이다. 하늘의 빛들은 뜨고 지고, 차고 기운다. 움직이며 그림자도 드리운다. 그런데 그 빛들을 지으신 아버지는 변하지 않으신다. 그러니 그분에게서 내려오는 것은 언제나 좋은 것이다. 그렇다고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다 좋은 일이라는 말은 아니다. 내 형편이 달라져도 하나님의 선하심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시련이 오면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도 변한 건 아닌지 묻게 된다. 하지만 변하는 것은 우리의 형편이지 하나님의 선하심이 아니다.

    그리고 야고보는 그 선하심을 어디에서 가장 분명히 볼 수 있는지 말한다.

    약 1:18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여기서 '낳으셨다'는 말은 15절에서 죄가 사망을 '낳는다'고 할 때 쓴 바로 그 말이다. 야고보는 같은 말을 다시 쓴다. 욕심은 죄를 낳고 죄는 사망을 낳는다. 그런데 하나님은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다. 한쪽은 죽음으로 끝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다. 그것도 우리에게 무언가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뜻을 따라, 우리를 원하셔서 낳으셨다. 그리고 우리를 '첫 열매'라고 부르신다. 구약에서 첫 열매는 추수의 맨 처음 것으로, 먼저 하나님께 구별하여 드리는 몫이었다. 동시에 앞으로 거둘 온 들판의 추수를 미리 보여 주는 것이었다. 그러니 말씀으로 거듭난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이고, 하나님이 온 세상을 새롭게 하실 그 일의 맨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이다.

    오늘은 이 '첫 열매'라는 말이 내 마음에 깊이 남는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고 말한다.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기에, 그를 믿는 우리에게도 부활이 약속되었다. 그런데 야고보는 하나님이 우리를 피조물 가운데 첫 열매가 되게 하셨다고 한다. 그래. 하나님을 버리고 썩어져 가는 이 세상 한가운데서, 하나님은 우리를 말씀으로 낳으시고 창조의 형상을 다시 회복하는 첫 열매로 세우셨다. 이 얼마나 위대한 초대인가? 그리고 우리 뒤에 그 길을 따라올 수많은 사람들에게도 그 창조의 형상을 다시금 약속하신다. 그래 사실 이 길은 우리가 처음 걷는 길이 아니다. 이미 앞서 그 길을 걸어간 믿음의 선조들이 있다. 이제 우리가 그 길을 따라갈 차례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 뒤에 올 이들도 우리를 보고 그 길을 따라올 것이다. 그래서 오늘 나는 우리 공동체의 지체들을 떠올리며 기도한다. 낯선 땅에서 함께 예배하는 우리가 하나님께 구별된 첫 열매로 그 영광을 누리기를... 그리고 그 열매를 맺으시는 하나님을 함께 찬양하는 자리에 서기를...

    中文 AI翻譯

    標題:眾光之父

    昨天我們從「你們落在百般試煉中,都要以為大喜樂」這段話語開始了雅各書。試煉顯明信心是真實的,並且藉著忍耐使我們成全。今天,雅各接續這個話題。

    雅 1:12 忍受試探的人是有福的,因為他經過試驗以後,必得生命的冠冕;這是主應許給那些愛他之人的。

    「經過試驗」在原文中的意思是「通過檢驗而被認可」。只要想起昨天所看的熔爐就明白了。正如經過火煉的金子被認定為真金,忍受試煉的人必得生命的冠冕。並不是冠冕是一回事、生命又是另一回事;生命本身就是冠冕。而雅各稱這樣的人為「愛主的人」。說到底,忍受試探的人和愛主的人是同一群人。所以,忍耐並不是與神無關地咬緊牙關硬撐,而是在試煉當中仍不放開與神的關係。

    然而到了下一節,同樣的「試探」一詞卻用在了不同的意思上。

    雅 1:13 人被試探,不可說:「我是被神試探」;因為神不能被惡試探,他也不試探人。

    這裡要仔細看。韓文聖經把第2節和第13節都譯作「試探」,原文也是同一字根的詞。但第2節的試探是鍛鍊信心的考驗,第13節的試探則是把人拉向罪的引誘。因此英文聖經把第2節譯為試煉(trial),第13節譯為引誘(tempt)。神試驗亞伯拉罕,也是一種考驗——不是要絆倒亞伯拉罕,而是要顯明他的信心是真的。相反地,引誘是要把人拉向罪,使人倒下。神是不被惡動搖的那一位,所以祂絕不以惡引誘任何人。

    但問題在於,這兩者可能在同一個地方相遇。耶穌被聖靈引到曠野,就在那曠野中受魔鬼的試探。在神那一方是考驗的地方,在魔鬼那一方卻是引誘。我們的試煉也是如此。神要藉那試煉鍛鍊我的信心,而我裡面的私慾卻正以那試煉為藉口,把我拉向罪。然後跌倒的時候,就很想這樣說:「是神把我放在這個處境裡的,我會變成這樣,歸根究柢不也是因為神嗎?」雅各要攔阻的正是這句話。考驗是神所做的,但跌倒在引誘中的責任,卻不能推給神。

    那麼,引誘是如何使人跌倒的呢?

    雅 1:14-15 但各人被試探,乃是被自己的私慾牽引誘惑的。15 私慾既懷了胎,就生出罪來;罪既長成,就生出死來。

    雅各叫我們往自己裡面看,看引誘從哪裡來——就是自己的私慾。「牽引」和「誘惑」在原文中是打獵和釣魚時用的詞。就像掛著餌的魚鉤引誘魚、把魚拖走一樣,私慾引誘人、把人拖走。接著雅各把比喻換成生產:私慾懷了胎就生出罪,罪長成了就生出死。起初,一點私慾看起來似乎無關緊要。但其中已經有罪的種子,若放任不管,終必走向死亡。話雖如此,我們卻不可對受苦的人說「那也是因為你的私慾」。雅各所說的不是苦難的原因,而是在苦難中傾向惡的那顆心的來源。

    所以雅各說「不要看錯了」。如果以為神用惡來試探我,那就已經被欺騙了。因為從神而來的不是惡,而是美好的事物。

    雅 1:17 各樣美善的恩賜和各樣全備的賞賜都是從上頭來的,從眾光之父那裡降下來的;在他並沒有改變,也沒有轉動的影兒。

    「眾光之父」的意思是創造日月星辰的造物主。天上的光體有升有落,有盈有虧,會移動,也會投下影子。但造這些光體的父卻不改變。所以從祂那裡降下來的,永遠是美善的。這並不是說發生在我身上的每件事都是好事,而是說即使我的處境改變,神的良善也不會改變。試煉來臨時,我們會問:是不是連神的心意也變了?但改變的是我們的處境,而不是神的良善。

    接著,雅各告訴我們在哪裡最能清楚看見這份良善。

    雅 1:18 他按自己的旨意,用真道生了我們,叫我們在他所造的萬物中好像初熟的果子。

    這裡的「生了」,正是第15節說罪「生出」死時所用的同一個詞。雅各再次使用同樣的詞:私慾生出罪,罪生出死;但神卻用真道生了我們。一邊以死亡告終,神卻賜給我們生命。而且這並不是因為我們有什麼資格,乃是神按自己的旨意,因為渴慕我們而生了我們。祂還稱我們為「初熟的果子」。在舊約中,初熟的果子是收成中最早的一份,是先分別出來獻給神的。同時,它也預先顯示了日後整片田野將要收成的莊稼。所以,藉著話語重生的我們,是屬於神的人,也是站在神將要更新全世界這工作最前面的人。

    今天,「初熟的果子」這句話深深留在我心裡。保羅說,基督從死裡復活,成為睡了之人初熟的果子。因為耶穌成了復活初熟的果子,信祂的我們也得著了復活的應許。而雅各說,神叫我們在祂所造的萬物中成為初熟的果子。是啊。在這離棄神、日漸敗壞的世界當中,神用話語生了我們,立我們作恢復創造形象的初熟果子。這是何等偉大的邀請!祂也向將來跟隨我們走這條路的許多人,再次應許那創造的形象。是啊,其實這條路並不是我們第一個走的。已經有信心的先祖們在前面走過了這條路。現在輪到我們跟上去了。總有一天,在我們之後的人也會看著我們,跟著走上這條路。所以今天,我想著我們群體中的肢體們禱告:願在異鄉一同敬拜的我們,作為分別歸神的初熟果子,享受那份榮耀……也願我們一同站在讚美那使我們結果子之神的地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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