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 사사기 16:1–14
今日默想:士師記 16:1–14
제목 : 밤에 삼켜지는 태양
어제 우리는 레히의 샘 곁에서 삼손이 처음으로 '주께서 이 큰 구원을 베푸셨다'고 고백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본문은 '블레셋 사람의 때에 삼손이 이스라엘의 사사로 이십 년 동안 지냈더라'는 말로 한 단락을 닫았다. 그런데 오늘 16장은 그 고백이 무색하게, 다시 삼손의 눈에서 시작된다.
삿 16:1–3 삼손이 가사에 가서 거기서 한 기생을 보고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2 가사 사람들에게 삼손이 왔다고 알려지매 그들이 곧 그를 에워싸고 밤새도록 성문에 매복하고 밤새도록 조용히 하며 이르기를 새벽이 되거든 그를 죽이리라 하였더라 3 삼손이 밤중까지 누워 있다가 그 밤중에 일어나 성 문짝들과 두 문설주와 문빗장을 빼어 가지고 그것을 모두 어깨에 메고 헤브론 앞산 꼭대기로 가니라
가사는 블레셋의 다섯 도시 가운데 가장 남쪽, 이스라엘 땅에서 가장 먼 곳이다. 삼손이 왜 그곳까지 갔는지 본문은 말하지 않는다. 다만 그곳에서 한 기생을 '보았다'고 한다. 삼손의 이야기는 이렇게 늘 그의 눈이 움직이는 곳에서 시작된다.
가사 사람들은 밤새도록 성문에서 기다렸다. 새벽이 되면 죽이려 했다. 그런데 삼손은 밤중에 일어나 성문을 문설주와 빗장째 뽑아 어깨에 메고 헤브론 쪽 산꼭대기로 가 버린다. 적의 성문을 떼어 가는 것은 그 도시의 힘과 자존심을 짓밟는 일이었다. 그런데 여기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삼손은 기생의 집에서 나와서도 여전히 성문을 멜 힘이 있었다. 그리고 이 장면에는 여호와의 영이 임했다는 말이 없다. 잘못된 자리에서도 힘은 그대로였다. 그러나 힘이 계속된다는 것이 하나님께서 그의 행동을 인정하신다는 뜻은 아니다. 삼손은 아마 그 둘을 구분하지 못했을 것이다.
삿 16:4–5 이 후에 삼손이 소렉 골짜기의 들릴라라 이름하는 여인을 사랑하매 5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그 여인에게로 올라가서 그에게 이르되 삼손을 꾀어서 무엇으로 말미암아 그 큰 힘이 생기는지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하면 능히 그를 결박하여 굴복하게 할 수 있을는지 알아보라 그리하면 우리가 각각 은 천백 개씩을 네게 주리라 하니
삼손이 어떤 여인을 '사랑했다'고 본문이 말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딤나의 여인은 '보았고' '내 눈에 옳았을' 뿐이었다. 가사의 기생도 '보았을' 뿐이었다. 그런데 들릴라는 사랑했다. 눈으로 시작하던 끌림이 이제 마음까지 내려온 것이다. 그런데 들릴라가 삼손을 사랑했다는 말은 끝내 나오지 않는다.
삼손이라는 이름은 '해'와 연결된 이름이다. 그리고 들릴라라는 이름을 '밤'과 연결해 읽는 이들도 있다. 이름의 뜻을 확정할 수는 없지만, 본문에서 삼손의 몰락이 늘 밤과 잠의 자리에서 진행되는 것은 분명하다. 가사 사람들은 밤새도록 그를 기다렸고, 삼손은 이제 들릴라 곁에서 잠이 들 것이다. 해가 밤에 조금씩 삼켜지고 있었다.
블레셋의 방백들은 들릴라에게 거래를 건다. 삼손의 힘이 어디서 오는지 알아내면 각각 은 천백 개씩을 주겠다는 것이다. 블레셋의 다섯 도시 방백을 말하는 것이라면 모두 오천오백 개다. 한 사람의 마음을 사기에 충분한 돈이었다. 딤나의 블레셋 청년들은 협박으로 비밀을 캐냈지만, 이번에 방백들은 돈으로 캐낸다. 그리고 들릴라는 숨기지도 않고 곧장 묻는다.
삿 16:6–7 들릴라가 삼손에게 말하되 청하건대 당신의 큰 힘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생기며 어떻게 하면 능히 당신을 결박하여 굴복하게 할 수 있을는지 내게 말하라 하니 7 삼손이 그에게 이르되 만일 마르지 아니한 새 활줄 일곱으로 나를 결박하면 내가 약해져서 다른 사람과 같으리라
'마르지 아니한 새 활줄'은 짐승의 힘줄로 만든, 아직 마르지 않은 줄로 보는 이들이 많다. 들릴라는 정말로 그 줄로 삼손을 묶는다. 그리고 방 안에는 정말로 사람들이 숨어 있었다.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들이 당신에게 들이닥쳤느니라.' 삼손은 그 줄을 불에 그을린 삼실처럼 끊어 버린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자기를 묶은 여인이, 숨어 있던 블레셋 사람들이 이렇게 분명히 드러났는데 삼손은 그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삿 16:10–11 들릴라가 삼손에게 이르되 보라 당신이 나를 희롱하여 내게 거짓말을 하였도다 청하건대 무엇으로 당신을 결박할 수 있을는지 이제는 내게 말하라 하니 11 삼손이 그에게 이르되 만일 쓰지 아니한 새 밧줄들로 나를 결박하면 내가 약해져서 다른 사람과 같으리라 하니라
들릴라는 오히려 삼손을 나무란다. '당신이 나를 희롱하여 내게 거짓말을 하였도다.' 자기를 팔려는 사람이, 자기가 속았다며 삼손을 책망한다. 그런데도 삼손은 다시 대답한다. 이번에는 새 밧줄이다. 생각해 보라. 새 밧줄은 레히에서 유다 사람들이 삼손을 묶었던 바로 그것이다. 그때 그 밧줄은 불탄 삼처럼 떨어져 나갔다. 삼손은 이미 아무 힘도 쓰지 못했던 방법을 다시 내놓는다. 이 정도는 언제든 끊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말대로 삼손은 밧줄을 실처럼 끊는다. 방 안에는 이번에도 사람들이 숨어 있었다.
삿 16:13 들릴라가 삼손에게 이르되 당신이 이 때까지 나를 희롱하여 내게 거짓말을 하였도다 내가 무엇으로 당신을 결박할 수 있을는지 내게 말하라 하니 삼손이 그에게 이르되 그대가 만일 나의 머리털 일곱 가닥을 베틀의 날실에 섞어 짜면 되리라 하는지라
여기서 삼손의 대답이 달라진다. 처음에는 짐승의 힘줄이었고, 다음에는 밧줄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나의 머리털 일곱 가닥'이다. 삼손의 머리털은 그가 태에서부터 하나님께 구별되었다는 표지다. 일곱 갈래로 땋아 늘어뜨린 그 머리, 지금까지 한 번도 삭도가 닿지 않은 그 머리를 삼손이 처음으로 입 밖에 꺼낸 것이다. 아직 비밀을 말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답이 한 번 갈 때마다 비밀의 문턱에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다. 그리고 들릴라가 그 머리털을 베틀에 짜는 동안, 삼손은 그녀 곁에서 잠들어 있었다. 세 번째 외침이 들리자 삼손은 잠에서 깨어 베틀을 통째로 뽑아 버린다. 이번에도 삼손이 이겼다.
그러면 삼손은 왜 이 자리를 떠나지 않았을까. 본문은 그 이유를 말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는 두 가지를 안다. 삼손은 들릴라를 사랑했다. 그리고 삼손은 지금까지 한 번도 진 적이 없었다. 사자도, 아스글론 사람들도, 레히의 천 명도, 가사의 성문도 그를 막지 못했다. 그러니 이 세 번의 결박도 그에게는 대수롭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자신감 때문에, 그는 위험이 세 번이나 드러났는데도 그것을 보지 못했다.
그렇다. 삼손은 아직 비밀을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비밀을 지키는 사람의 태도는 이미 무너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거짓말로 비밀을 멀리했지만, 세 번째에는 하나님께 구별된 자기 머리털을 들릴라와의 위험한 놀이 안으로 끌고 들어왔다. 몰락은 머리가 잘리는 순간 갑자기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거룩한 것을 가볍게 다루기 시작한 순간부터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 세 번의 외침은 모두 삼손의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네 번째 외침이 다가오고 있다. 해는 그렇게, 밤에 조금씩 삼켜지고 있었다.
오늘 이 본문을 묵상하며 '삼손이 들릴라를 사랑하매'라는 한 줄을 다시 생각해 본다. 우리는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우상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바울은 탐심을 우상 숭배라고 했다. 그렇다면 어쩌면 들릴라는 삼손에게 우상이 되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그녀가 세 번이나 자기를 블레셋에게 넘기려 했는데도 삼손은 그 곁을 떠나지 못했고, 결국 하나님께 구별된 자기 머리털까지 그녀 앞에 내놓았다. 그녀를 잃지 않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구별된 자로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해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도 그런 실수를 하고 있지는 않을까? 그래 우상은 대부분 내 눈에 나쁜 것이 아니라 더 좋아 보이는 것이다. 그렇기에 일의 성과, 사람들의 인정, 안정된 삶,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까지도 하나님보다 앞자리에 서면 우상이 된다. 그것을 잃을까 두려워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머뭇거리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거룩한 것을 조금씩 내어주고 있다면, 우리도 들릴라 곁을 떠나지 못하는 삼손과 다르지 않다. 그래 오늘 우리는 우리 마음이 무엇에 매달려 있는지 하나님 앞에서 다시 살피며, 모든 사랑의 첫자리를 하나님께 돌려드리며 살아가야 한다. 그것이 해가 밤에 삼켜지지 않는 방법이다.
標題:在黑夜中漸漸被吞噬的太陽
昨天我們看到參孫在利希的泉水旁,第一次承認「耶和華藉我的手施行了這麼大的拯救」。而經文以「當非利士人轄制以色列的時候,參孫作以色列的士師二十年」這句話,結束了那一段。然而今天的十六章,卻讓那句告白顯得蒼白無力,故事再次從參孫的眼目開始。
士16:1–3 參孫到了迦薩,在那裡看見一個妓女,就與她親近。2 有人告訴迦薩人說:「參孫到這裡來了!」他們就把他團團圍住,終夜在城門悄悄埋伏,說:「等到天亮我們便殺他。」3 參孫睡到半夜,起來,將城門的門扇、門框、門閂,一齊拆下來,扛在肩上,扛到希伯崙前的山頂上。
迦薩是非利士五座城市中最南端的一座,離以色列的土地最遠。經文並未說明參孫為何到了那裡。只說他在那裡「看見」一個妓女。參孫的故事,總是這樣從他眼目的移動開始。
迦薩人終夜在城門守候,打算等到天亮就殺他。然而參孫半夜起來,將城門連門框、門閂一併拔起,扛在肩上,走向希伯崙那邊的山頂。拆走敵人的城門,是對那座城市的力量與尊嚴的踐踏。但我們不可忽略這一點:參孫即使走出妓女的家,仍然有力氣扛起城門。而這個場景裡,並沒有提到耶和華的靈降在他身上。即使身處錯誤的地方,他的力氣依然絲毫不減。然而力量持續存在,並不代表神認可他的行為。參孫恐怕一直無法分辨這兩者的不同。
士16:4–5 此後,參孫在梭烈谷喜愛一個婦人,名叫大利拉。5 非利士人的首領上去見那婦人,對她說:「求你誆哄參孫,探探他因何有這麼大的力氣,我們用何法能勝他,捆綁剋制他,我們就每人給你一千一百舍客勒銀子。」
經文第一次說參孫「喜愛」某個女人。亭拿的女子,他只是「看見」,覺得「這事在我眼中看為美」。迦薩的妓女,他也只是「看見」。然而大利拉,他卻是「喜愛」。原本從眼目開始的吸引,如今深入到了心裡。然而,經文始終沒有說大利拉愛參孫。
參孫這名字與「太陽」有關。也有人將大利拉這個名字與「黑夜」聯繫在一起解讀。雖然名字的含義無法確定,但在經文中,參孫的墮落的確總是在夜晚與沈睡之地展開。迦薩人終夜守候著他,而如今參孫即將在大利拉身旁沈睡。太陽正一點一點地被黑夜吞噬。
非利士的首領們與大利拉做了一筆交易:只要查出參孫力量的來源,每人便給她一千一百舍客勒銀子。若是指非利士五座城市的首領,合計便是五千五百舍客勒——這足以買通一個人的心。亭拿的非利士青年是以威脅逼問出秘密,而這一次首領們則是用金錢收買。大利拉也毫不隱藏,直接開口詢問。
士16:6–7 大利拉對參孫說:「求你告訴我,你因何有這麼大的力氣,當用何法捆綁剋制你。」7 參孫回答說:「人若用七條未乾的青繩子捆綁我,我就軟弱像別人一樣。」
多數學者認為「未乾的青繩子」,是指用牲畜筋腱做成、尚未乾燥的繩索。大利拉果真用那樣的繩子捆綁了參孫,房間裡也確實藏著埋伏的人。「參孫哪,非利士人拿你來了!」參孫卻如扯斷經火的麻線一般,輕易掙斷了那繩子。然而奇怪的是——捆綁自己的女人、藏匿的非利士人,如此明顯地暴露出來,參孫卻仍不肯離開那個地方。
士16:10–11 大利拉對參孫說:「你欺哄我,向我說謊言。現在求你告訴我當用何法捆綁你。」11 參孫回答說:「人若用沒有用過的新繩捆綁我,我就軟弱像別人一樣。」
大利拉反倒責備參孫:「你欺哄我,向我說謊言。」一個想要出賣自己的人,竟還能以「自己被騙」為由責怪參孫。然而參孫依然回答了她。這一次是新繩子。細想一下,這新繩子正是利希人用來捆綁參孫的那種繩子,當時那繩子如燒焦的麻線般應聲而斷。參孫竟又拿出一個早已證明毫無用處的方法——或許是因為他有一種自信,認為無論如何都能掙脫。果然,他如扯斷細線一般掙斷了繩子。房間裡這一次仍然藏著埋伏的人。
士16:13 大利拉對參孫說:「你到如今還是欺哄我,向我說謊言。求你告訴我當用何法捆綁你。」參孫回答說:「你只要將我頭上的七條髮綹,與緯線同織就可以了。」
此處參孫的回答開始有了變化。起初是獸筋,接著是繩索,如今卻是「我頭上的七條髮綹」。參孫的頭髮,從母腹中便是他歸神為聖的標記。那七股編成的長髮,至今從未被剃刀觸碰過的頭髮,參孫第一次將它說出口了。雖然還不是秘密本身,但每一次的回答,都讓他離秘密的門檻更近一步。而當大利拉將那髮綹織入機杼之時,參孫就在她身旁沉睡。第三聲呼喊響起,參孫從睡夢中驚醒,將整台織機連根拔起。這一次,又是參孫獲勝。
那麼,參孫為何始終不肯離開這個地方呢?經文並未說明原因。但我們知道兩件事:參孫愛大利拉;而且參孫至今從未嘗過失敗的滋味。無論是獅子、亞實基倫人、利希的一千人,還是迦薩的城門,都無法阻擋他。所以這三次被捆綁,對他來說或許根本不足為奇。然而正是因為這份自信,儘管危險已三次清楚地顯露出來,他卻始終視而不見。
是的,參孫至今尚未說出秘密。但守密之人應有的態度,早已開始崩塌。最初他以謊言將秘密隔得遠遠的,到了第三次,卻已將自己那被神分別為聖的頭髮,拖入了與大利拉之間的危險遊戲中。墮落並非在頭髮被剪斷的那一刻才突然開始,而是從他開始輕看那神聖之物的那一刻起,便已悄然進行。三次呼喊,都以參孫的勝利告終。然而第四次呼喊,正步步逼近。太陽,就這樣,一點一點地被黑夜吞噬。
默想今天這段經文時,「參孫喜愛大利拉」這句話,值得我們再三思量。我們將比神更被我們所愛的事物稱為偶像,因此保羅說貪婪就是拜偶像。那麼或許,大利拉對參孫而言,早已成了一個偶像。正因如此,即使她三次企圖將他出賣給非利士人,參孫仍無法離開她身邊,最終甚至將那被神分別為聖的頭髮,也擺在她面前。不失去她,竟變得比在神面前持守分別為聖的身分還要重要。那麼,如今的我們,是否也正在犯著同樣的錯誤呢?是的,偶像多半不是我們眼中「不好」的東西,而是看起來「更好」的東西。因此,工作的成就、他人的肯定、安穩的生活,甚至是我們所愛的家人,一旦站在神之前的位置,就會變成偶像。若我們因害怕失去這些,而在神的話語面前躊躇不前,為了守住它們而一點一點地出讓那神聖的部分,那麼我們與那個無法離開大利拉身邊的參孫,其實並無二致。因此,今天我們當再次在神面前省察自己的心究竟牽掛著什麼,並將一切愛的首位,重新歸還給神。那,才是使太陽不致被黑夜吞噬的方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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