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 이사야 28:14–29
今日默想:以賽亞書28:14-29
믿는 자는 다급하게 되지 아니하리라
어제 본문에서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은 이사야를 조롱했다. 우리도 다 아는 이야기를 왜 하나하나 가르치려 드느냐는 것이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이르면 그들이 왜 그렇게 큰소리를 칠 수 있었는지가 드러난다. 그들에게는 믿는 구석이 따로 있었던 것이다.
사 28:15 너희가 말하기를 우리는 사망과 언약하였고 스올과 맹약하였은즉 넘치는 재앙이 밀려올지라도 우리에게 미치지 못하리니 우리는 거짓을 우리의 피난처로 삼았고 허위 아래에 우리를 숨겼음이라 하는도다
그들은 사망과 스올과 언약하였다고 한다. 도대체 이게 어떤의미인가? 물론 예루살렘의 지도자이 실제로 이렇게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주석가들도 이 구절이 그들의 말을 그대로 옮긴 것이라기보다 그들의 태도를 이사야가 그렇게 규정한 것으로 본다.
그렇다면 그들이 실제로 한 일은 무엇이었는가. 당시 유다는 앗수르의 위협 앞에서 애굽과 손을 잡으려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강대국과 조약을 맺어 두었기에 재앙이 지나가도 우리는 안전하다고 여긴 것이다. 그러니 그들이 선지자의 경고를 비웃은 이유가 분명해진다. 우리에게는 이미 확실한 대책이 있는데 무슨 걱정이냐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것은 죽음과 맺은 계약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피난처로 삼은 것이 거짓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거짓 피난처에 맞서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사 28:16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보라 내가 시온에 한 돌을 놓아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촛돌이라 그것을 믿는 이는 다급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
그들은 앗수르라는 재앙을 피하려고 애굽과 맺은 언약 아래 몸을 숨겼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 앞에 돌을 놓아 기초를 삼으신다. 그리고 그 돌을 시험한 돌이라 부르신다. 이미 검증을 마친 돌이라는 뜻이다. 곧 그들이 숨어야 할 곳은 애굽이 아니라 하나님이 놓으신 이 돌이었다. 그래서 본문은 이렇게 말한다. 그것을 믿는 이는 다급하게 되지 아니하리라고.
그런데 이 약속이 지도자들에게는 위로만이 아니었다. 한 주석가는 이 말씀이 그들에게는 도리어 위협이었다고 지적한다. 하나님이 새로 기초를 놓으신다는 것은, 그들이 지금까지 세워 온 것이 그 기초 위에 있지 않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놓으신 기초 앞에서 그들이 의지하던 질서와 안전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었다.
그리고 신약은 이 돌이 누구인지를 더욱 분명히 보여 준다. 베드로와 바울은 이 말씀을 그리스도께 가져간다(롬 9:33, 벧전 2:6). 하나님이 시온에 놓으신 견고한 기초는 결국 우리가 만들어 내는 대책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면 하나님은 무엇으로 그 건물을 재시는가.
사 28:17 나는 정의를 측량줄로 삼고 공의를 저울추로 삼으니 우박이 거짓의 피난처를 소탕하며 물이 그 숨는 곳에 넘칠 것인즉
건축 용어가 이어진다. 기초 돌을 놓으시고, 줄과 추로 재신다. 곧 하나님이 지으시는 건물의 규격이 정의와 공의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줄에 맞지 않는 것은 남지 못한다. 그래서 우박이 거짓의 피난처를 쓸어 가고 물이 숨는 곳에 넘친다. 애굽과 맺은 그 조약이 하나님의 줄에 맞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면 그들이 마련해 둔 그 피난처가 어떤 것이었는지를 하나님이 그림으로 보여 주신다.
사 28:20 침상이 짧아서 능히 몸을 펴지 못하며 이불이 좁아서 능히 몸을 싸지 못함 같으리라 하셨느니라
누울 수는 있는데 다리를 뻗을 수 없다. 덮을 수는 있는데 몸이 다 가려지지 않는다. 급한 대로 마련해 놓았으나 정작 필요할 때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 없이 마련하는 안전이 대개 그렇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마지막은 농부의 비유다. 앞에서 무거운 심판을 선포하신 하나님이 왜 갑자기 농사 이야기를 하시는가.
사 28:24 파종하려고 가는 자가 어찌 쉬지 않고 갈기만 하겠느냐 자기 땅을 개간하며 고르게만 하겠느냐
농부는 밭을 갈기만 하지 않는다. 갈기를 마치면 씨를 뿌린다. 그리고 씨마다 심는 자리가 다르고, 곡식마다 타작하는 방법이 다르다. 소회향처럼 연한 것은 막대기로 가볍게 떨고, 단단한 곡식은 수레바퀴로 떤다. 그런데 그 곡식도 늘 떨기만 하지는 않는다.
주석가들은 이 비유의 요지를 이렇게 정리한다. 하나님이 심판하시되 필요 이상으로 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상에 따라 그 방법이 다르다는 것이다. 농부가 밭을 갈아엎는 것은 그 밭을 못 쓰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씨를 심으려는 것이다. 곡식을 떠는 것도 그것을 부수려는 것이 아니라 양식으로 삼으려는 것이다. 갈고 떨고 빻는 과정이 다 아프지만, 그 모두가 마침내 양식을 만들어 내는 데 쓰인다. 그래서 이 비유가 이렇게 닫힌다.
사 28:29 이도 만군의 여호와께로부터 난 것이라 그의 경영은 기묘하며 지혜는 광대하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은 단지 하나님이 나를 지켜 주실 것이라고 믿는 것만이 아니다. 때로는 밭이 갈아엎어지는 것처럼 보이고, 곡식이 두들겨 맞는 것처럼 느껴질 때에도 그분의 경영이 나의 생각보다 지혜롭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오늘 새벽이 본문을 묵상하며 16절에 '믿는 자는 다급하게 되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이 자꾸 마음에 남는다. 그래 요즘 나는 자주 쫓기듯 산다. 해야 할 일이 밀려 있고, 준비해야 할 것이 남아 있고, 마음은 늘 다음 일로 먼저 가 있다. 몸은 일하고 있는데 마음엔 평안함이 없고 오히려 더 다급해진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읽으며 그 다급함이 어디서 오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본문에서 다급함의 반대는 부지런함이 아니었다. 믿음이었다. 그리고 그 앞에 기초 돌이 있었다. 그러니 내가 조급하다는 것은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알려 주는 신호인지도 모르겠다. 돌아보면 내가 쫓길 때는 대체로 내가 붙들지 않으면 무너질 것 같다고 여길 때였다. 그때 나는 그 하나님이 주신 기초 위에 서 있지 않고 내가 마련한 자리에 누워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오늘은 조금 천천히 걷고 싶다.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알고 있는 사람으로 하루를 살아가고 싶다. 내가 기초를 붙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놓으신 기초가 나를 붙들고 있기 때문이다.
信靠的人必不著急
昨天的經文中,耶路撒冷的領袖們嘲諷了以賽亞。他們認為,我們都已經知道的道理,何必一句一句地教導呢?然而到了今天的經文,便顯明了他們為何能如此大言不慚。原來他們另有所倚靠的東西。
賽28:15 你們曾說:「我們與死亡立約,與陰間結盟;敵軍如水漲漫經過的時候,必不臨到我們;因我們以謊言為避所,在虛假之下藏身。」
他們說自己與死亡和陰間立了約。這究竟是什麼意思呢?當然,耶路撒冷的領袖們實際上並沒有這樣說過。注釋家們也認為,這節經文與其說是他們話語的原樣記錄,不如說是以賽亞對他們態度的定性描述。
那麼,他們實際做的事是什麼呢?當時猶大在亞述的威脅面前,正試圖與埃及結盟。他們認為既然已與強國訂立條約,即便災禍臨到,我們也能安然無恙。於是他們嘲笑先知警告的緣由便清楚了——我們已經有了確實的對策,還有什麼可擔憂的呢?然而在神眼中,那卻是與死亡所立的約。因為他們所倚靠的避難所本是虛假的。
面對這虛假的避難所,神如此說道:
賽28:16 所以主耶和華如此說:「看哪,我在錫安放一塊石頭作為根基,是試驗過的石頭,是穩固根基,寶貴的房角石;信靠的人必不著急。」
他們為了躲避亞述這場災禍,藏身於與埃及所立的盟約之下。然而神卻在他們面前放下一塊石頭作為根基,並稱這塊石頭為「試驗過的石頭」,意即已經通過檢驗的石頭。也就是說,他們本應躲藏的地方不是埃及,而是神所放置的這塊石頭。所以經文說:信靠這石頭的人必不著急。
然而這個應許對於那些領袖而言,並不僅僅是安慰。有位注釋家指出,這句話對他們來說反倒是一種威脅。因為神要重新立定根基,就意味著他們至今所建立的一切都不在那根基之上。在神所立的根基面前,他們一向倚仗的秩序與安全,再也沒有立足之地。
而新約更清楚地顯明了這塊石頭究竟是誰。彼得與保羅都將這段經文引向了基督(羅9:33,彼前2:6)。神在錫安所立的堅固根基,終究不是我們自己想出的對策,而是神所賜下的基督。
那麼神要用什麼來丈量這座建築呢?
賽28:17 我以公平為準繩,以公義為線鉈;冰雹必沖去謊言的避所,大水必漫過藏身之處。
建築用語接續而來。祂放下根基之石,又用準繩與線鉈來丈量。也就是說,神所建造的房屋的規格,乃是公平與公義。凡不合這準繩的,都不得存留。於是冰雹要沖去謊言的避難所,大水要漫過那藏身之處。他們與埃及所立的那條約,正是不合神的準繩。
接著,神用一幅圖畫向他們顯明,他們所預備的那避難所究竟是怎樣的。
賽28:20 原來床榻短,使人不能舒身;被窩窄,使人不能遮體。
能躺下,卻無法伸直雙腿;能蓋上,卻無法完全遮蔽全身。倉促之間預備好的東西,到了真正需要的時候卻毫無用處。人在沒有神的情況下所預備的安全,大抵如此。
而今天經文的最後,是一個關於農夫的比喻。前面宣告了如此沉重審判的神,為何突然講起了農事呢?
賽28:24 那耕地為要撒種的,豈是常常耕地呢?豈是常常開墾耙地呢?
農夫並非只是一味地耕地。耕完之後便撒種。而且每種種子所種下的地方各不相同,每種穀物所用的打穀方法也各異。像小茴香那樣柔嫩的,就用杖輕輕地打;堅硬的穀物,則用車輪碾軋。然而即便如此,那穀物也並非永遠只是被碾軋。
注釋家們將這比喻的要旨歸納如下:神施行審判,卻不會過度。並且,依照對象的不同,方法也各有差異。農夫翻耕田地,並非要使那田地荒廢不能使用,而是為了要撒種。打穀也並非要將穀物打碎損毀,而是要使其成為糧食。耕、打、磨這一連串過程雖都令人痛苦,但這一切最終都是為了成就糧食。所以這比喻如此結尾:
賽28:29 這也是出於萬軍之耶和華,他的謀略奇妙,他的智慧廣大。
因此,我們倚靠神,並不僅僅是相信神會保守我。有時即使田地看似被翻耕,穀物彷彿被擊打,我們仍要相信,祂的籌算比我的想法更有智慧。
今天清晨默想這段經文時,第16節「信靠的人必不著急」這句話,一直縈繞在我心頭揮之不去。是啊,近來我常常活得像是被什麼追趕著一樣。該做的事堆積如山,該準備的事情尚未完成,心思總是提前奔向下一件事。身體在做著事,心裡卻沒有平安,反而愈發焦急。然而今天讀著這段經文,我重新思考了這種焦急究竟從何而來。經文中,焦急的反面並非勤勉,而是信心。而在信心之前,還有那塊根基之石。所以,我的焦躁不安,或許正是一個信號,告訴我自己究竟站在何處。回想起來,每當我被追趕的時候,大抵都是我以為若不是我親自撐住,一切就會崩塌的時候。那時,我並沒有站在神所賜的根基之上,而是躺在自己搭建的地方。所以今天,我想稍微放慢腳步走一走。願我能作為一個知道自己何以不必匆忙的人,度過這一天。因為並非我抓住了那根基,而是神所立的根基,一直緊緊抓住著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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