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 이사야 16:1-14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하나님
어제 본문은 모압에 임할 심판을 노래했다. 오늘 16장은 그 심판을 선언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모압에게 끝까지 열어 두신 구원의 길을 보여 준다. 심판은 이미 정해져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 전에 먼저 돌아올 기회를 주셨다.
사16:1 "너희는 이 땅 통치자에게 어린양들을 드리되 셀라에서부터 광야를 지나 딸 시온 산으로 보낼지니라."
모압은 아르논 강을 넘어 둥지를 잃은 새처럼 떠돌게 될 처지였다. 그런 그들에게 하나님은 뜻밖에도 살 길을 제시하신다. 시온으로 어린양을 보내라는 말씀은 단순한 조공이 아니라, 하나님께 복종하며 그분의 통치 아래로 돌아오라는 초청이었다.
사16:3-5 "너는 방도를 베풀며 공의를 행하며… 다윗의 장막에 인자함으로 왕위가 굳게 설 것이요…"
하나님은 또 하나의 길을 말씀하신다. 피난 온 자를 숨겨 주고 보호하라는 것이다. 지금은 연약해 보이는 유다이지만, 하나님께서 세우실 다윗의 왕권은 신실과 정의로 굳게 설 것이기 때문이다. 모압은 롯의 후손으로 이스라엘과 형제 나라였다.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기보다 시온으로 돌아오기를 바라셨다.
그러나 모압은 그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사16:6 "우리가 모압의 교만을 들었나니 심히 교만하도다…"
모압이 하나님의 권고를 거부한 이유는 교만이었다. 높은 지형과 풍요로운 땅, 오랫동안 평안했던 역사는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자신을 의지하게 만들었다. 성경이 말하는 교만은 단순히 잘난 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보다 자신을 더 높이는 마음이다. 결국 우상숭배도 그 교만에서 시작된다.
사16:7-8 "그러므로 모압이 모압을 위하여 통곡하되… 헤스본의 밭과 십마의 포도나무가 말랐음이라…"
모압은 가장 자랑하던 포도원과 풍요를 잃는다. 함께 울어 줄 이웃도 없이 자기 자신을 위해 통곡한다. 하나님보다 의지했던 것이 결국 가장 먼저 무너진 것이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가장 마음에 남는 장면은 심판보다 하나님의 눈물이다.
사16:9,11 "내가 야셀의 울음처럼… 울리라… 내 창자가 길하레셋을 위하여 그러하도다."
하나님은 심판을 선언하시면서도 함께 슬퍼하신다. 죄를 미워하시지만 죄인이 망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는 분이시다. 마지막까지 돌이키기를 기다리셨지만, 모압은 끝내 우상 그모스를 붙들었고, 그들의 기도는 아무 응답도 얻지 못했다.
오늘 본문을 묵상하며 어제 묵상했던 모압 사람들의 통곡이 다시 떠올랐다. 그들의 눈물은 분명 진심이었다. 하지만 그 눈물이 향한 곳은 하나님이 아니라 우상이었다. 교만이라는 장벽이 하나님께 돌아가는 길을 막고 있었던 것이다.
모압의 비극은 환경의 비극이 아니라 마음의 비극이었다. 풍성함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스스로를 높이며 하나님을 대적한 교만이 문제였다. 하나님은 심판하시면서도 동시에 우시는 분이며, 여러 차례 경고와 기회를 주시고 끝까지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분이시다. 우리 역시 학력이나 재산, 신앙의 경력까지도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순간 그것이 교만의 올무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자랑할 것은 나 자신이 아니라 오직 나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뿐이다. 오늘도 겸손히 하나님 앞에 엎드려, 내 간절함의 방향이 하나님을 향하고 있는지 다시 살피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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