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 사사기 16:15–31
今日默想:士師記 16:15–31
제목 : 다시 자라기 시작하니라
어제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 삼손은 세 번이나 들릴라에게 거짓을 말했고, 세 번 모두 묶인 줄을 끊고 일어났다. 그러나 그 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늘 본문에서 들릴라는 날마다 삼손을 조르고, 결국 삼손은 자기 마음을 다 털어놓는다. 자신이 모태에서부터 하나님께 구별된 나실인이라는 사실까지 말이다. 그리고 그 밤, 들릴라의 무릎을 베고 잠든 삼손의 머리가 밀린다. 그리고 네 번째로 같은 외침이 들린다.
삿 16:20 들릴라가 이르되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이 당신에게 들이닥쳤느니라 하니 삼손이 잠을 깨며 이르기를 내가 전과 같이 나가서 몸을 떨치리라 하였으나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삼손은 잠에서 깨며 '전과 같이' 나가겠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세 번이나 그랬으니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 여긴 것이다. 그런데 삼손은 조금 전 들릴라에게 머리가 밀리면 '내 힘이 내게서 떠나고'라고 말했다. 하지만 본문은 힘이 떠났다고 말하지 않는다. 여호와께서 떠나셨다고 말한다. 원문에서 두 말은 같은 동사다. 삼손은 자기 힘이 떠날 것을 걱정했지만, 정작 떠난 것은 여호와셨다. 그래 삼손의 힘은 처음부터 머리털에 있지 않았다. 하나님이 함께하심에 있었다. 그리고 본문은 한마디를 더 붙인다. 그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였다. 삼손의 비극은 힘을 잃은 데 있지 않았다. 하나님이 떠나셨는데도 자신은 여전히 전과 같다고 여긴 데 있었다.
결국 블레셋 사람들은 그를 붙잡아 두 눈을 뺀다. 생각해 보라. 이 사람은 '내 눈에 옳다'며 딤나의 여인을 데려오라 했던 사람이다. 자기 눈에 좋은 대로 살아온 사람이 결국 그 두 눈을 잃는다. 그리고 얼마 전 성 문짝을 어깨에 메고 걸어 나왔던 가사로, 이번에는 놋 줄에 매여 끌려 내려간다. 거기서 그는 옥에서 맷돌을 돌린다. 종들이 하던 일이다. 이스라엘을 블레셋의 손에서 구원하기 시작하리라 했던 사람이, 이제 블레셋의 손 아래서 맷돌을 돌리는 종이 된 것이다. 그런데 본문은 한 줄을 조용히 끼워 넣는다.
삿 16:22 그의 머리털이 밀린 후에 다시 자라기 시작하니라
이 한 줄이 무엇을 말하는가. 머리털에 힘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 머리털은 삼손이 모태에서부터 하나님께 구별된 사람이라는 표였다. 블레셋 사람들은 그 표를 밀어 버렸고,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여겼다. 그런데 본문은 바로 그 맷돌 곁에서 머리털이 다시 자라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여기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사람은 밀어 버릴 수 있어도, 자라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삼손은 하나님을 잊고 살았지만, 하나님은 삼손에게서 손을 놓지 않으셨다. 아무도 부르짖지 않을 때 먼저 찾아와 이 아이를 약속하셨던 그 하나님이, 가장 깊은 어둠 속에서 다시 일하기 시작하신 것이다. 그래 삼손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하나님의 이야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블레셋 사람들은 다곤의 신전에 모여 잔치를 벌인다. 자기들의 신이 원수 삼손을 넘겨주었다고 노래한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삼손이 무너진 것은 다곤이 강해서가 아니라 여호와께서 떠나셨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들은 눈먼 삼손을 불러내 재주를 부리게 하고, 삼손은 한 소년의 손에 이끌려 신전을 버틴 두 기둥 사이에 선다. 그리고 거기서 이렇게 기도한다.
삿 16:28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나의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하고
삼손의 이야기 속에서 그가 여호와께 부르짖은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처음은 나귀 턱뼈로 천 명을 죽이고 목이 말라 죽게 되었을 때였다. 두 번 다 벼랑 끝에서 나온 기도였다. 그런데 이 기도에 무엇이 담겼는지 보라. 나를 생각해 달라, 나를 강하게 해 달라, 나의 두 눈을 뺀 원수를 갚게 해 달라. 이스라엘도 없고 자신을 부르신 사명도 없다. 온통 '나'다. 마지막 순간까지 삼손은 자기 원수 갚는 일을 구한다. 그래 이 기도를 회개의 기도라 부르기는 어렵다.
그런데 기둥이 무너진다. 이전에 삼손이 큰일을 할 때마다 본문은 '여호와의 영이 임하매'라고 말했다. 그런데 여기에는 그 말이 없다. 하나님이 응답하셨다는 말도 없다. 그저 삼손이 힘을 다하여 몸을 굽히자 집이 무너졌다고만 기록한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머리털이 아니라 여호와께 있던 그 힘이, 그 순간 다시 삼손에게 주어졌다는 것을. 그렇다면 하나님은 무엇을 들으신 것인가. 삼손의 기도가 훌륭해서가 아니다. 자기밖에 모르던 사람의 부르짖음조차 외면하지 않으신 것이다.
삼손은 '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기를 원하노라' 하며 죽는다. 본문은 그가 죽을 때 죽인 자가 살았을 때 죽인 자보다 많았다고 기록한다. 그의 가장 큰 승리가 그의 죽음과 함께 온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삼손의 삶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역설이다.
그리고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내려가 그의 시신을 가져다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아버지 마노아의 장지에 장사한다.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여호와의 영이 처음 그를 움직이기 시작하신 곳이다. 이야기가 시작된 그 자리로 돌아와 삼손의 이야기가 닫힌다. 그런데 삼손의 이야기 끝에도 '그 땅이 평온하였다'는 말이 없다. 그는 블레셋 사람의 때에 이십 년 동안 사사로 지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그가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 하셨다. 삼손은 시작만 했다. 그 구원은 다른 이를 통해 이어질 것이다. 그래 오늘은 이것을 기억하자. 이 이야기에서 끝까지 신실하셨던 분은 삼손이 아니라 하나님이셨다. 아무도 부르짖지 않을 때 먼저 찾아오셨던 하나님이, 자기밖에 모르던 사람의 마지막 부르짖음까지 들으시고, 처음 하신 약속을 지키셨다.
삼손은 사사기에 등장하는 마지막 사사다. 지금까지 사사들의 이야기를 따라오며 우리는 한 가지를 보게 된다. 사사들은 백성을 구원하는 자리에 섰지만, 그들의 모습은 백성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쩌면 사사들은 그 시대 이스라엘의 영적 얼굴을 비추는 거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 공동체는 어떤 모습일까. 그것을 알기 위해 멀리 볼 필요는 없다. 나를 보면 된다. 공동체를 섬긴다는 내 모습 속에 우리 공동체의 얼굴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나는 내 기도를 돌아본다. 삼손처럼 끝까지 나만 찾는 기도는 아니었는지... 아니면 우리 공동체만 바라보며 그 울타리 안에 머무는 기도는 아니었는지... 하나님은 처음부터 한 사람, 한 공동체를 그 자신만을 위해 부르지 않으셨다. 그 부르심 너머에는 언제나 열방이 있었다. 그래 오늘 우리는 그 기도의 자리로 다시 나아간다. 나를 넘고 우리를 넘어 열방을 품는 기도로... 밀렸던 머리털이 다시 자라기 시작했듯, 무너졌던 우리의 기도도 하나님 앞에서 다시 자라기 시작하기를... 그리고 그 기도로 나아가는 우리를 통해 일하실 하나님을 우리 눈으로 목도하기를 소망한다.
標題:又開始長起來了
昨天我們所讀的經文中,參孫三次對大利拉說謊,三次都掙脫了捆綁站了起來。然而那一夜還沒有結束。在今天的經文裡,大利拉天天催逼參孫,參孫終於把自己心裡的話全盤托出,甚至連自己從母腹起就是分別為聖歸神的拿細耳人這件事也說了出來。就在那一夜,參孫枕著大利拉的膝睡著了,頭髮被剃去。於是第四次,同樣的呼喊聲再次響起。
士16:20 大利拉說:「參孫哪,非利士人拿你來了。」參孫從睡中醒來,心裡說:「我要像前幾次一樣出去活動身體。」他卻不知道耶和華已經離開他了。
參孫從睡夢中醒來,說要「像前幾次一樣」出去。到目前為止已經有三次都是如此,所以他以為這次也會一樣。然而,就在不久前,參孫才對大利拉說,若剃去他的頭髮,「我的力氣就離開我」。但經文並沒有說力氣離開了,而是說耶和華離開了。原文中這兩句話用的是同一個動詞。參孫擔心的是自己的力氣會離開,但真正離開的卻是耶和華。原來參孫的力量從一開始就不在頭髮裡,而在於神的同在。經文又加上了一句話:他卻不知道。參孫的悲劇不在於失去了力量,而在於神已經離開,他卻仍然以為自己和從前一樣。
最終非利士人抓住他,剜了他的雙眼。想想看,這個人曾說「我眼中以她為美」,要人把亭拿的女子娶來給他。這個隨自己眼目所喜悅而活的人,最終失去了自己的雙眼。不久前他才把城門扛在肩上走出迦薩,這次卻被銅鍊鎖著拖下去。在那裡,他在監牢裡推磨——這是奴僕所做的工作。那位曾被宣告「要開始拯救以色列脫離非利士人的手」的人,如今卻在非利士人手下成了推磨的奴僕。然而經文卻靜靜地插入了一句話。
士16:22 然而他的頭髮被剃之後,又開始長起來了。
這一句話在說什麼呢?力量並不在頭髮裡。那頭髮是參孫從母腹起就分別為聖歸神的記號。非利士人剃去了那記號,以為一切都結束了。然而經文卻說,就在那推磨的磨石旁,頭髮又開始長出來了。這裡絕不能輕易略過。人可以剃去頭髮,卻無法阻止它重新生長。參孫雖然忘記了神,神卻沒有放開祂對參孫的手。那位在無人呼求之時就先來應許這孩子的神,在最深的黑暗之中,又重新開始作工了。所以參孫的故事到這裡並沒有結束,因為神的故事還沒有結束。
非利士人聚集在大袞廟中擺設筵席,歌頌他們的神把仇敵參孫交在他們手中。然而我們知道,參孫之所以倒下,並不是因為大袞強大,而是因為耶和華已經離開了他。他們把瞎眼的參孫叫出來,叫他戲耍取樂;參孫被一個少年人牽著手,站在支撐廟宇的兩根柱子中間。就在那裡,他這樣禱告:
士16:28 參孫呼求耶和華說:「主耶和華啊,求你眷念我。神哪,求你這一次使我有力量,好讓我一舉報那非利士人剜我雙眼的仇。」
在參孫的整個故事中,這是他第二次向耶和華呼求。第一次是他用驢腮骨殺了一千人、口渴幾乎喪命的時候。兩次都是在絕境之中發出的禱告。但請看這禱告裡裝的是什麼——求你眷念我,求你使我有力量,讓我報那剜我雙眼之人的仇。這裡沒有以色列,也沒有呼召他的使命,滿滿都是「我」。直到最後一刻,參孫所求的仍是替自己報仇。因此,這篇禱告實在難以稱之為悔改的禱告。
然而柱子倒塌了。以往每當參孫行大事時,經文總說「耶和華的靈降在他身上」,但這裡卻沒有這句話,也沒有說神應允了他。經文只是記載,參孫盡力彎身,房子就倒塌了。但我們知道,那不在頭髮、而在耶和華裡的力量,在那一刻又重新賜給了參孫。那麼神聽見的究竟是什麼呢?並不是因為參孫的禱告多麼美好,而是神並沒有掩面不聽那個一生只曉得為己求的人,最後發出的呼求。
參孫說:「情願與非利士人同死」,就這樣死了。經文記載,他死時所殺的人比活著時所殺的還多。他最大的勝利,竟與他的死一同臨到。這或許正是參孫一生最能呈現的弔詭之處。
他的弟兄和他父親的全家都下去,把他的屍首抬上來,葬在瑣拉和以實陶中間,他父親瑪挪亞的墳墓裡。瑣拉和以實陶之間——正是耶和華的靈最初感動他的地方。故事回到了開始的那個地方,參孫的故事也就此結束。然而,就連這故事的結尾,也沒有「那地太平」這樣的話。他在非利士人的時期作了二十年士師。神從一開始就說,他要「開始」拯救以色列。參孫只是開了頭,那拯救的工作要藉著另一個人繼續下去。所以今天讓我們記住這一點:在這個故事裡,自始至終信實的那一位,不是參孫,而是神。那位在無人呼求之時就先來尋找的神,連那個一生只曉得為己求的人最後的呼喊,也垂聽了,並且信守了祂起初所立下的應許。
參孫是士師記中最後一位士師。一路跟隨眾士師的故事走來,我們看見了一件事:士師們雖然站在拯救百姓的位置上,他們自己的樣式卻與百姓並沒有太大的不同。也許,士師們正是那個時代以色列屬靈面貌的一面鏡子。那麼,今天我們的群體又是什麼樣子呢?要知道這一點,不需要看得太遠,只需看看自己就好。因為在我這個「服事群體」的樣子裡,其實就映照出我們群體的面貌。所以今天我回顧自己的禱告:是不是也像參孫一樣,直到最後都只為自己求?還是,我的禱告只停留在我們這個群體的範圍之內,躲在那道籬笆裡面不曾踏出?神從起初就不是只為了某一個人、某一個群體自身而呼召他們,在那呼召的背後,總有萬邦萬民。所以今天,讓我們再次來到那禱告的地方——以一顆超越自己、超越我們群體,懷抱萬邦的心來禱告。願我們被剃去的頭髮能再次長起來,願我們倒塌的禱告也能在神面前重新生長;願我們藉著這樣的禱告前行,也能親眼看見神藉著我們動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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