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 사사기 7:1–14
今日默想:士師記 7:1–14
제목 : 만일 네가 내려가기를 두려워하거든
기드온은 하롯 샘 곁에 진을 쳤다. '하롯'은 '떨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동사와 같은 어근에서 나온 말이고, '떨림의 샘' 정도로 옮길 수 있다. 그런데 바로 뒤에서 하나님이 돌려보내라고 하신 '두려워 떠는 자'도 같은 어근의 단어다. 저자가 일부러 말을 맞추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기드온이 지금 서 있는 자리의 이름과 기드온의 속마음이 묘하게 겹쳐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떨고 있는 기드온에게 뜻밖의 말씀을 하신다. 군대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삿 7:2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따르는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넘겨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하나님이 기드온의 군대를 줄이시는 이유는 분명하다. 이스라엘이 이긴 뒤에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고 말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 '스스로 자랑하다'라는 말에는 자기 자신에게 영광을 돌린다는 뜻이 들어 있고, 그 자랑은 결국 '하나님을 거슬러' 하는 자랑이 된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돌아가야 할 영광을 사람이 자기 쪽으로 끌어오는 것을, 하나님은 단순한 착각으로 보지 않으신다. 하나님을 거스르는 일로 보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기드온의 군대를 두 번에 걸쳐 줄이신다. 먼저 두려워 떠는 사람들을 돌려보내자 이만 이천 명이 떠났고 만 명이 남았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것도 많다고 하셨고, 물가에서 사람들을 다시 나누신 뒤에 삼백 명만 남기셨다. 처음 삼만 이천 명 가운데 삼백 명이다. 나중에 사사기 8장은 이 전쟁을 돌아보면서 칼 든 자 십이만 명이 죽었고 남은 자가 약 만 오천 명이라고 기록한다. 두 숫자를 합하면 동방 연합군의 규모는 십삼만 오천 명에 이른다. 숫자만 놓고 보면 처음부터 상대가 되지 않는 싸움이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 작은 군대를 더 줄이셨다.
여기서 흔히 듣는 설명이 하나 있다. 물을 손으로 떠서 개처럼 핥아 먹은 삼백 명은 주변을 살필 수 있었기 때문에 군인으로 더 뛰어난 사람들이었다는 해석이다. 그런데 본문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본문은 하나님이 왜 그 방법으로 삼백 명을 고르셨는지 아예 설명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들이 더 훈련된 정예병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본문 밖의 추정이다. 오히려 본문에서 분명한 것은 따로 있다. 하나님은 이 전쟁에서 사람이 자랑할 만한 근거를 하나씩 없애고 계셨다. 그래서 그 삼백 명조차 '우리가 특별해서 뽑혔다'고 말할 수 없다. 자기들이 왜 남았는지 그들도 모르기 때문이다.
결국 기드온의 손에 남은 것은 삼백 명과 양식과 나팔뿐이었다. 반면 골짜기에는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 사람들이 메뚜기 떼처럼 퍼져 있었다. 하나님은 기드온에게서 병력을 계속 덜어 내셨고, 그 빈자리에 하나님 자신을 남기셨다. 그러니 이 전쟁의 승리는 처음부터 칼의 숫자로 설명될 수 없게 되었다. 실제로 이 전쟁의 승리는 이스라엘의 무기가 아니라 나팔과 항아리와 횃불, 그리고 하나님이 미디안 진영을 혼란에 빠뜨리신 일로 이루어진다.
그런 밤에 하나님이 기드온에게 다시 말씀하셨다.
삿 7:9-11 그 밤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진영으로 내려가라 내가 그것을 네 손에 넘겨 주었느니라 10 만일 네가 내려가기를 두려워하거든 네 부하 부라와 함께 그 진영으로 내려가서 11 그들이 하는 말을 들으라 그 후에 네 손이 강하여져서 그 진영으로 내려가리라 하시니 기드온이 이에 그의 부하 부라와 함께 군대가 있는 진영 근처로 내려간즉
하나님은 "내가 그것을 네 손에 넘겨주었느니라"고 하셨다. 전쟁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하나님은 이미 끝난 일처럼 말씀하신다. 그런데 나는 그 다음 말이 더 마음에 남는다. "만일 네가 내려가기를 두려워하거든." 기드온은 아직 하나님께 저는 두렵다고 말한 적이 없다. 그런데 하나님은 기드온이 입을 열기 전에 이미 그의 두려움을 알고 계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말라고만 하지 않으시고, 기드온이 두려워할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까지 알려 주셨다. 6장에서는 기드온이 먼저 양털을 내놓았고 하나님이 그 요구에 응답하셨다. 그런데 7장에서는 순서가 바뀐다. 기드온이 아무것도 구하지 않았는데 하나님이 먼저 주신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목적도 눈에 들어온다. "네 손이 강하여져서"이다. 하나님은 기드온의 군대를 강하게 하지 않으시고 기드온의 손을 강하게 하려 하셨다. 하나님이 이 밤에 다루고 계신 것은 전력이 아니라 기드온이라는 사람이었다.
기드온은 말씀을 듣고 부라와 함께 내려갔다. 다만 겁이 많아 적진 깊이 들어가지는 못하고 가장 바깥 전초지까지만 갔다. 그리고 거기서 미디안 군사 둘이 나누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 사람은 보리떡 한 덩어리가 진영으로 굴러 들어와 장막을 쳐서 뒤집어 놓는 꿈을 꾸었다고 했고, 옆에 있던 군사가 그 꿈을 이렇게 풀었다.
삿 7:14 그의 친구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의 칼이라 하나님이 미디안과 그 모든 진영을 그의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 하더라
보리는 밀보다 값싼 곡물이다. 미디안의 눈에 초라해 보였을 이스라엘과 보리떡 한 덩어리가 겹쳐 보인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이다. 미디안 군사가 꿈을 풀며 한 말이 하나님이 조금 전에 기드온에게 하신 말씀과 거의 같다.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내가 그것을 네 손에 넘겨주었느니라" 하셨고, 미디안 군사는 "하나님이 미디안과 그 모든 진영을 그의 손에 넘겨주셨느니라" 하고 말했다. 기드온은 이미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적진까지 내려온 사람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말씀을 적군의 입을 통해 다시 들려주셔서 기드온의 손을 강하게 하셨다. 기드온 한 사람을 세우시려고 하나님이 적군의 꿈까지 사용하신 것이다. 기드온이 두려움 때문에 잠들지 못하던 그 밤에, 하나님은 이미 골짜기 건너편 미디안 진영에서도 일하고 계셨다.
기드온은 그 꿈과 해몽하는 말을 듣고 곧바로 하나님께 경배했다. 그 순간 기드온의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졌다고까지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기드온은 이제 예배하고, 돌아가서 군대를 일으키고, 전쟁을 시작할 만큼의 힘은 얻었다. 그러니까 기드온은 내려가기 전에 모든 확신을 얻은 것이 아니었다. 그는 두려운 채로 먼저 내려갔고, 내려간 그 자리에서 하나님이 준비해 두신 말씀을 들었다.
이 새벽에 나 역시 "만일 네가 내려가기를 두려워하거든"이라는 말씀이 나를 붙잡는다. 요즘 나는 가족의 일로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있는데,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쉽게 판단이 서지 않는다. 한쪽을 생각하면 다른 쪽이 마음에 걸리고, 결정을 미루고 있으면 시간이 지나가는 것이 또 마음에 걸린다. 내가 잘못 판단해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못할 것이 염려된다. 그래서 요즘 내 마음에는 평안보다 염려가 더 많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기드온이 자기 두려움을 말하기도 전에 이미 그 두려움을 알고 계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말라고만 하지 않으시고, 네가 두려워하거든 부라와 함께 내려가라고 하셨으며, 기드온이 내려가면 무엇을 듣게 될지까지 미리 준비해 두셨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염려하고 있는 이 일도 하나님께는 갑자기 생긴 일이 아닐 것이다. 나는 아직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지 모르고 어떤 선택이 더 좋은지도 분명히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내가 이 일을 놓고 기도하기 전부터 하나님은 이미 이 상황을 알고 계셨고, 내가 보지 못하는 것과 내가 아직 알지 못하는 길도 하나님은 보고 계실 것이다. 그렇기에 아마 나에게 지금 필요한 것도 모든 답을 한꺼번에 얻는 일이 아니라, 오늘 해야 할 한 가지를 알고 그것을 먼저 하는 일일 것이다. 나는 아직 이 일 앞에서 평안하지 않고 내가 내릴 결정이 두렵기도 하다. 그래도 내가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하나님이 이미 알고 계신다는 것, 그리고 내가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지를 하나님이 필요한 때에 보여 주실 것이라는 것은 신뢰하며 고백한다. 그렇기에 오늘은 조급함보다, 내 염려보다 먼저 그 자리에 계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지금 내가 해야 할 한 걸음을 내딛는 하루가 되길 기도한다.
標題:你若害怕下去
基甸在哈律泉旁安營。「哈律」這個字,源自希伯來文中意為「顫抖」的動詞同一詞根,可以譯為「顫抖之泉」。而緊接其後,神吩咐要打發回去的「懼怕、戰兢的人」,也是出自相同詞根的字。雖然不能斷定作者是刻意讓用詞相互呼應,但基甸此刻所站之地的名字,與他內心的狀態,確實奇妙地重疊在一起。
然而,神卻對正在戰兢的基甸說出出乎意料的話——軍隊太多了。
士7:2 耶和華對基甸說:跟隨你的人過多,我不能將米甸人交在他們手中,免得以色列人向我誇大,說:是我們自己的手救了我們。
神減少基甸軍隊的原因十分明確:以色列得勝之後,會說「是我們自己的手救了我們」。這裡「向我誇大」一語,含有將榮耀歸給自己的意思,而這樣的誇耀,最終成了「向神誇大」的悖逆之舉。也就是說,人將本該歸給神的榮耀,攬到自己身上,神並不將此視為單純的誤解,而是視為悖逆神的行為。
因此,神分兩次減少了基甸的軍隊。首先,讓懼怕戰兢的人回去,兩萬二千人離開,剩下一萬人。然而神仍說人數太多,於是又在水邊將眾人分開,最後只留下三百人。從最初的三萬二千人中,僅剩三百人。後來士師記第八章回顧這場戰爭時,記載了拿刀的敵軍十二萬人陣亡,剩餘約一萬五千人。將這兩個數字相加,東方聯軍規模達十三萬五千人。單就數字而言,這從一開始就是一場毫無勝算的戰爭。然而神卻仍要進一步削減這支已經弱小的軍隊。
這裡有一個常聽到的解釋:那三百個用手捧水像狗一樣舔水喝的人,因為能夠隨時警覺四周,所以是更優秀的戰士。然而經文本身並未如此說明。經文完全沒有解釋神為何以那樣的方式挑選出三百人。因此,說他們是訓練更精良的精兵,只是經文之外的臆測。經文中真正清楚呈現的,其實是另一件事:神在這場戰爭中,正一一除去人可以誇口的憑藉。因此,就連那三百人,也無法說「我們是因為特別才被揀選」。因為連他們自己,也不知道自己為何被留下。
最終,留在基甸手中的,只剩三百人、糧食和號角。而在山谷之中,米甸人、亞瑪力人與東方人卻如蝗蟲一般密密麻麻地散布著。神不斷地從基甸身上取走兵力,並在那空出的位置上,留下了祂自己。因此,這場戰爭的勝利,從一開始就無法用刀劍的數量來解釋。事實上,這場戰爭的勝利,並非靠以色列的兵器,而是靠著號角、瓶子與火把,以及神使米甸營陷入混亂而成就的。
就在那樣的夜晚,神再次對基甸說話。
士7:9-11 當那夜,耶和華吩咐基甸說:起來,下到米甸營裡去,因我已將他們交在你手中。10 倘若你怕下去,就帶你的僕人普拉下到那營裡去。11 你必聽見他們所說的,然後你就有膽量下去攻營。於是基甸帶著僕人普拉下到營旁。
神說:「因我已將他們交在你手中。」戰爭尚未開始,神卻已用彷彿已經結束的口吻說話。然而,讓我更加銘記於心的是接下來的那句話——「倘若你怕下去」。基甸從未向神說過自己害怕。但神在基甸開口之前,早已知道他心中的恐懼。而神並非只吩咐他不要害怕,甚至連他若害怕時該怎麼做,都一併告訴了他。第六章中,是基甸先擺出羊毛,神才回應他的請求;但到了第七章,順序卻反了過來——基甸什麼都還沒有求,神就已先賜下。神說話的目的也十分清楚:「你就有膽量」。神所要加添的,不是基甸軍隊的力量,而是基甸這個人的膽量。神在那個夜晚所要對付的,不是戰力,而是基甸這個人本身。
基甸聽了這話,便與普拉一同下去。只是他因膽怯,不敢深入敵營,只走到了最外圍的哨所。就在那裡,他聽見兩名米甸士兵的對話。一人說他做了一個夢,夢見一個大麥餅滾進營中,撞倒帳棚,將帳棚翻轉過來;旁邊的士兵便如此解夢:
士7:14 他同伴說:這不是別的,乃是以色列人約阿施的兒子基甸的刀;神已將米甸和全軍都交在他的手中了。
大麥是比小麥更廉價的穀物。在米甸人眼中顯得寒酸卑微的以色列,與這一個大麥餅重疊呈現。但更重要的是接下來的內容。米甸士兵解夢時所說的話,幾乎與神方才對基甸所說的話一模一樣。神對基甸說:「因我已將他們交在你手中」,米甸士兵則說:「神已將米甸和全軍都交在他的手中了。」基甸原本就已聽過神的話語,才下到敵營附近。然而神卻藉著敵軍的口,再次將這話說給他聽,好使基甸的膽量得以堅固。神甚至使用了敵軍的夢,只為建立基甸這一個人。在基甸因懼怕而無法入睡的那個夜晚,神其實早已在山谷對面的米甸營中動工了。
基甸聽見那夢與解夢的話,便立刻俯伏敬拜神。或許不能說基甸的恐懼在那一刻就完全消失了。但基甸此時已獲得足夠的力量,能夠敬拜、返回召集軍隊、展開這場戰爭。也就是說,基甸並非在下去之前就得到了全部的確據。他是帶著恐懼先下去的,而在那下去之處,他聽見了神早已為他預備好的話語。
在這個清晨,「你若害怕下去」這句話,同樣緊緊抓住了我的心。最近我正面臨一個關於家庭的重要決定,究竟該先做什麼、該做出怎樣的選擇,我實在難以判斷。想到這一邊,那一邊便令我掛心;若延遲決定,時間流逝這件事又讓我憂心。我擔心自己會判斷錯誤,以致無法遵行神的旨意。因此最近我心裡充滿的,憂慮多過平安。然而今天的經文中,神在基甸尚未說出自己的恐懼之前,就已經知道了。而神並非只是叫他不要害怕,而是說,你若害怕,就帶著普拉一同下去,甚至連基甸下去之後將會聽見什麼,神都早已預備好了。既然如此,我現在所憂慮的這件事,對神來說,恐怕也並非突然發生的事。我至今仍不知道該先做什麼,也無法明確說出哪一個選擇更好。但在我為這件事禱告之前,神早已知道這整個處境;我看不見的、我尚未知曉的道路,神也必然早已看見。因此,或許我現在所需要的,並非一次得到所有的答案,而是知道今天該做的那一件事,並先去做那件事。在這件事面前,我仍未得平安,對於自己即將做出的決定也心懷恐懼。但我願意相信並宣告:神早已知道我正在懼怕這個事實,神也必在祂所定的時候,指示我當先做的事。因此,願今天這一天,能夠先於急躁、先於我的憂慮,信靠那位仍在那裡的神,並邁出我現在當走的那一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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