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 사사기 11:1–11
今日默想:士師記 11:1–11
제목 : 다른 꿈을 꾸는 입다
어제 우리가 읽은 10장은 씁쓸한 장면으로 닫혔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곤고를 보시며 마음에 근심하셨다. 그런데 정작 길르앗 사람들은 하나님께 묻지 않고 '누가 먼저 나가서 싸우랴' 하고 자기들끼리 물었다. 그리고 싸움을 시작하는 사람을 머리로 삼겠다고 했다. 하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그때 본문은 한 사람을 소개한다.
삿 11:1-3 길르앗 사람 입다는 큰 용사였으니 기생이 길르앗에게서 낳은 아들이었고 2 길르앗의 아내도 그의 아들들을 낳았더라 그 아내의 아들들이 자라매 입다를 쫓아내며 그에게 이르되 너는 다른 여인의 자식이니 우리 아버지의 집에서 기업을 잇지 못하리라 한지라 3 이에 입다가 그의 형제들을 피하여 돕 땅에 거주하매 잡류가 그에게로 모여 와서 그와 함께 출입하였더라
입다는 싸움에 능한 용사였다. 그런데 그는 창녀의 아들이었다. 그래서 이복형제들에게 쫓겨났다. 쫓겨난 입다 곁에 '잡류'가 모여들었다. 원문에서 '빈 사람들'이라는 뜻인데, 아비멜렉이 돈으로 산 사람들을 부를 때 쓰인 바로 그 말이다. 그렇다면 입다를 이렇게 만든 것은 누구인가. 입다가 처음부터 빈 사람들과 어울려 다닌 것은 아니었다. 형제들이 그를 내쫓았고, 공동체가 그것을 눈감았다. 갈 곳 없는 사람 곁에 모인 것은 역시 갈 곳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래 입다의 거친 삶 뒤에는 그를 밀어낸 길르앗의 얼굴이 있다.
그런데 암몬이 쳐들어오자 길르앗 장로들이 바로 그 입다를 찾아간다. 그리고 '우리의 장관이 되라'고 한다. 장관은 전쟁 지휘관이다. 싸움에만 쓰고 공동체 안으로는 들이지 않겠다는 계산이다. 그러자 입다가 대답한다.
삿 11:7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전에 나를 미워하여 내 아버지 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이제 너희가 환난을 당하였다고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 하니라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말이다. 어제 하나님께서도 이스라엘에게 '너희가 택한 신들에게 부르짖으라. 너희의 환난 때에 그들이 너희를 구원하리라'고 하셨다. 평소에는 버리더니 급하니까 찾아왔느냐는 것이다. 그렇다. 이스라엘은 하나님만 필요할 때 찾은 것이 아니었다. 사람도 필요할 때만 찾았다. 그러자 장로들이 다시 매달린다. 이제 우리가 당신을 찾아왔으니 함께 가서 싸워 달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장관이 아니라 '머리의 자리'를 내건다. 그때 입다가 이렇게 말한다.
삿 11:9-10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암몬 자손과 싸우게 할 때에 만일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게 넘겨 주시면 내가 과연 너희의 머리가 되겠느냐 하니 10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에게 이르되 여호와는 우리 사이의 증인이시니 당신의 말대로 우리가 그렇게 행하리이다 하니라
이 협상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처음 꺼낸 사람은 장로들이 아니라 입다였다. 입다는 큰 용사였지만 '내가 이기면'이라고 하지 않았다. '여호와께서 넘겨주시면'이라고 했다. 승리는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것을 그는 알았다. 그런데 여기서 잘 보아야 하는 것은 바로 그 문장 끝에 '내가 너희의 머리가 되겠느냐'가 붙어 있다는 것이다. 원문은 '내가 너희의 머리가 될 것이다'라는 다짐으로도 읽힌다. 즉 하나님의 승리와 자기의 자리를 한 문장 안에 묶어 놓은 것이다. 그래 믿음과 계산이 함께 있다.
삿 11:11 이에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과 함께 가니 백성이 그를 자기들의 머리와 장관을 삼은지라 입다가 미스바에서 자기의 말을 다 여호와 앞에 아뢰니라
입다는 하나님을 빼놓지 않았다. 그 모든 말을 여호와 앞에 아뢰었다. 하지만 본문은 입다가 하나님께 묻고 뜻을 구했다고 하지 않는다. 이미 정한 말을 아뢰었다고 한다. 생각해 보자. 사사기는 처음에 '여호와께서 사사들을 세우사 노략하는 자의 손에서 그들을 구원하게 하셨다'고 했다. 사사는 하나님께서 세우시고, 하나님을 대신해 백성을 바로 판단하고 건져 내는 사람이었다. 자리가 아니라 사명이었다. 그런데 그 사사의 모습이 조금씩 바뀌어 왔다. 기드온은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고 고백했지만 끝내 왕처럼 살았다. 아비멜렉은 아예 스스로 왕이 되었다. 야일의 아들 서른은 성읍 서른을 가졌다. 그리고 이제 입다는 머리의 자리를 협상해서 얻는다. 백성들이 그를 '머리로 삼았다'. 결국 사사기를 통해 보여주는 것은 하나님을 대신해 섬기던 자리가, 사람이 조건을 걸고 주고받는 통치의 자리가 되어가는 모습이다.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입다를 버리지는 않으신다. 곧 여호와의 영이 입다에게 임하고, 훗날 사무엘은 '여호와께서 입다를 보내사 너희를 원수의 손에서 건지셨다'고 회고한다. 비록 사람들은 계산으로 입다를 세우고, 입다 역시 사명이 되어야 할 그 일을 자기 자리를 얻는 기회로 삼았지만, 하나님은 그 계산 너머에서 그를 쓰신다. 어제 이스라엘의 곤고를 견디지 못하셨던 그 긍휼이 여기서도 멈추지 않는 것이다.
오늘 나는 '만일 여호와께서 넘겨주시면… 내가 머리가 되겠느냐'는 입다의 말을 내 상황에 적용해 본다. 목사로 살아온 나도 늘 하나님의 이름을 말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일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과, 그 일로 내가 인정받기를 바라는 마음이 한 문장 안에 자주 섞여 있을 때가 있다. 목회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인데, 어느새 내가 지켜고 누려야 할 자리가 되어 버린 것은 아닌가. 하나님께 묻기보다 내가 이미 정한 것을 들고 가서 '여호와 앞에 아뢰는' 기도를 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래 안다. 이런 나의 연약함 속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그런 나를 용납하신다. 입다를 쓰셨던 것처럼... 그러나 그것은 내가 옳다는 증거가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이다. 이것을 잊지 않는 하루가 되길 소망한다. 그래 교회의 머리는 내가 아니라 그리스도이시다. 그래서 오늘 기도한다. 이 자리가 나의 자리가 아니라 주님이 맡기신 자리임을 잊지 않기를... 머리가 되려 하지 않고, 머리 되신 주님 아래에서 섬기는 자로 살아가는 하루가 되길...
標題:做著不同的夢的耶弗他
昨天我們讀的第10章,是以一個苦澀的場景結束的。神看見以色列的困苦,心中憂傷。然而基列人並沒有求問神,反倒彼此商議說:「誰能先去攻打亞捫人,誰就作我們的元帥。」但沒有一個人挺身而出。就在這時,經文介紹了一個人。
士11:1-3 基列人耶弗他是大能的勇士,是妓女的兒子;耶弗他是基列所生的。2 基列的妻也給他生了幾個兒子;他妻所生的兒子長大了,就趕逐耶弗他,說:「你不可在我們父家承受產業,因為你是妓女的兒子。」3 耶弗他就逃避他的弟兄,去住在陀伯地,有些匪徒到他那裡聚集,與他一同出入。
耶弗他是一位善戰的勇士。然而他是妓女之子,因此被同父異母的兄弟們趕出家門。被趕逐的耶弗他身邊,聚集了「匪徒」。原文的意思是「空虛的人」,正是亞比米勒用錢收買的那些人所使用的同一個詞。那麼,究竟是誰把耶弗他逼到這個地步的呢?耶弗他一開始並不是與空虛的人為伍的。是他的兄弟們把他趕了出去,而整個群體對此視而不見。聚集在無處可去之人身邊的,同樣也是無處可去的人。所以,在耶弗他粗糙的人生背後,有著把他推開的基列的面孔。
然而,當亞捫人來攻打時,基列的長老們竟去找了那個耶弗他,對他說:「求你來作我們的元帥。」元帥是戰爭的指揮官。這其實是一種算計:只在打仗時利用他,卻不打算讓他真正進入群體之中。於是耶弗他回答說:
士11:7 耶弗他對基列的長老說:「從前你們不是恨我,趕逐我出離父家嗎?現在你們遭遇急難為何到我這裡來呢?」
這句話聽起來十分耳熟。昨天神也曾對以色列說:「你們去哀求你們所選擇的神明吧,你們遭遇急難的時候,讓它們拯救你們吧。」意思是說:平時把我丟在一邊,急難臨頭才來找我嗎?沒錯,以色列並不只是在需要神的時候才去尋求神,對人也是如此,只在需要的時候才去找。於是長老們再次懇求,說如今我們既然來找你了,就求你與我們同去爭戰。這一次,他們開出的不再是元帥的位置,而是「頭領」的位子。這時耶弗他這樣說:
士11:9-10 耶弗他對基列的長老說:「你們叫我回去攻打亞捫人,耶和華把他們交給我,我豈能作你們的頭呢?」10 基列的長老回答耶弗他說:「有耶和華在你我中間作見證,我們必定照你的話行。」
在這場談判中,最先提到耶和華之名的,不是長老們,而是耶弗他。耶弗他雖是大能的勇士,卻沒有說「若我得勝」,而是說「若耶和華把他們交給我」。他深知勝利在乎神。然而在這裡我們必須仔細看的是,這句話的結尾附上了「我豈能作你們的頭呢」這句話。原文也可以讀作「我就必作你們的頭」的一種宣告。也就是說,他把神的勝利與自己的地位捆綁在同一句話裡了。所以,這裡既有信心,也有算計。
士11:11 於是耶弗他和基列的長老同去,百姓就立耶弗他作他們的頭、作他們的元帥。耶弗他在米斯巴將自己的一切話陳明在耶和華面前。
耶弗他並沒有把神撇在一邊,他把那一切的話都陳明在耶和華面前。然而經文並沒有說耶弗他求問神、尋求神的旨意,而是說他把已經決定好的話陳明出來。讓我們想一想:士師記一開始說,「耶和華興起士師,從搶奪他們財物之人的手中拯救他們。」士師是神所興起的,是代替神來為百姓伸張公義、拯救他們的人。這是一項使命,而不是一個位置。然而士師的樣貌,卻一點一點地在改變。基甸曾說「惟願耶和華治理你們」,最終卻活得像個王。亞比米勒則乾脆自立為王。耶珥的三十個兒子各擁有一座城邑。而如今耶弗他透過談判,換來了頭領的位子。百姓「立他為頭」。士師記最終所展現的,是那本應代替神來服事的位子,正一點一點變成了人可以討價還價、彼此交換的統治之位。
即便如此,神並沒有丟棄耶弗他。耶和華的靈很快降在耶弗他身上,日後撒母耳也回顧說:「耶和華差遣耶弗他,救你們脫離四圍仇敵的手。」雖然人是憑著算計立耶弗他為頭,耶弗他自己也把本應成為使命的事,當作獲取自己地位的機會,但神卻在那算計之外,依然使用了他。昨日那不忍以色列受苦的憐憫,在這裡依然沒有止息。
今天,我把耶弗他所說的「若耶和華把他們交給我……我豈能作頭呢」這句話,套用在我自己的處境上。作為一名牧者,我也總是掛著神的名。然而,盼望神的工作興旺的心,與盼望自己因此得人肯定的心,常常在同一句話裡混雜在一起。牧會本是神所託付的使命,然而不知不覺間,是否已經變成了我要守護、要享受的一個位子?我是否常常不是去求問神,而是拿著自己早已決定好的事,去做那種「陳明在耶和華面前」的禱告呢?是的,我知道。即便在我這樣的軟弱裡,神仍然容忍接納這樣的我,正如祂使用耶弗他一樣……然而,那並不是證明我是對的,而是神的憐憫。願我不忘記這一點,度過今天這一天。是的,教會的頭不是我,而是基督。所以,今天我這樣禱告:願我不忘記,這個位子不是我的位子,而是主所交託的位子……願我不去爭作頭,而是活在那作頭的主之下,做一個單單服事的人,度過今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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