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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묵상 : 사사기 8:22–35

    今日默想:士師記 8:22–35

    한경우··조회 140

    제목 : 에봇 하나를 만들어

    어제 본문에서 기드온은 전쟁에 이겼다. 그러나 그 승리의 끝자락에서 그의 말과 행동은 이미 갈라지고 있었다. 오늘 본문은 그 갈라진 틈이 어디까지 벌어지는지를 보여 준다.

    전쟁이 끝나자 백성이 기드온을 찾아온다.

    삿 8:22 그 때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 당신과 당신의 아들과 당신의 손자가 우리를 다스리소서 하는지라

    이 말에서 한 낱말을 붙잡아야 한다. '구원하셨으니'이다. 물론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가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6:14)고 말씀하셨으니, 기드온은 분명 구원의 도구로 부름받은 사람이다. 그러나 그를 도구로 쓰신 분도, 이기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셨다. 그런데 전쟁이 끝나자 백성은 도구였던 사람을 구원의 원인 자리에 올려놓는다. 그렇다. 사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막으시려 했던 그 말이다. 삼만 이천 명을 삼백 명까지 줄이신 이유가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하는 염려였는데(7:2), 백성은 그 영광을 통째로 사람에게 돌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백성들의 요구에 기드온의 대답은 뜻밖이다.

    삿 8:23 기드온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하겠고 나의 아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 하니라

    이 한 문장의 무게를 우리는 가볍게 여기면 안 된다. 이것은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이 불렀던 '여호와께서 영원무궁하도록 다스리시도다'(출 15:18)를 그대로 잇는 고백이다. 김지찬 교수는 사사기 전체에서 이 말을 입에 담은 사람이 기드온 하나뿐이라는 점을 주목한다. 그렇기에 사사기가 마지막에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라고 탄식할 때, 그 물음에 본문 안에서 바르게 대답한 사람이 기드온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기드온은 옳은 것을 알고 있었고, 옳은 것을 말했다. 그렇기에 그가 사사기의 한복판에 놓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제는 그 다음 절이다. 여호와께서 다스리신다고 말한 바로 그 입으로, 기드온은 백성에게 전리품을 요구한다. 그렇게 모인 금이 천칠백 세겔, 약 이십 킬로그램이었다. 왕의 창고에나 있을 법한 양이다. 여기에 미디안 왕들의 초승달 장식과 자색 의복과 낙타 목의 사슬까지 더해진다. 왕이 되지 않겠다고 말한 사람의 손에, 왕의 물건이 전부 들어온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 금으로 물건 하나를 만든다.

    삿 8:27 기드온이 그 금으로 에봇 하나를 만들어 자기의 성읍 오브라에 두었더니 온 이스라엘이 그것을 음란하게 위하므로 그것이 기드온과 그의 집에 올무가 되니라

    에봇은 본래 제사 제도에 속한 거룩한 물건이다. 다만 기드온이 만든 이 에봇이 정확히 어떤 형태였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제사장의 옷을 본떠 금으로 만든 옷이었는지, 어떤 형상에 입히던 것이었는지, 다른 무엇이었는지 본문은 말하지 않는다. 그러니 기드온이 처음에 만든 것은 하나님을 뜻을 알기 위한 거룩한 물건으로 만들었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저자가 결과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못 박는다. 온 이스라엘이 그것을 '음란하게 위하였고' 그것이 기드온과 그의 집에 '올무'가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두 낱말이 성경이 노골적인 우상숭배를 고발할 때 쓰는 말이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무서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드온은 바알의 단을 세운 것이 아니다. 그는 거룩한 물건을 만들었다. 그런데 백성은 그것을 섬겼다. 우상이 언제나 대놓고 바알이라는 이름을 달고 오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신앙의 옷을 입고 온다. 그렇기에 기드온의 의도는 잘 모르지만, 그의 행동이 2계명을 어긴 것이 되었고, 그로 인해 온 이스라엘을 그릇된 신앙으로 이끌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그것을 어디에 두었는지를 보아야 한다. 오브라이다. 바로 그 성읍은 기드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던 곳이고, 아버지 집의 바알 제단을 헐었던 곳이다. 우상을 허물었던 성읍이 사십 년 뒤에 온 이스라엘이 우상을 섬기러 오는 성읍이 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신 것은 아니다. 미디안은 다시 머리를 들지 못했고, 기드온이 사는 사십 년 동안 그 땅은 평온했다. 그리고 이 '그 땅이 평온하였더라'라는 말이 사사기에 나오는 것은 여기가 마지막이다. 기드온의 후반부가 이러했는데도 그 땅이 평온했다는 것은, 이 평온이 기드온이 잘해서 얻은 것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그 사십 년 동안 기드온은 어떻게 살았는가? 사시기 저자는 짧게 적는다. 그는 자기 집에 거주했고, 아내가 많았고, 아들이 칠십 명이었고, 세겜에 첩을 두었다. 왕이 많은 아내를 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율법이었는데(신 17:17) 그는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 그 첩에게서 난 아들에게 붙인 이름이 아비멜렉이다. '내 아버지는 왕이다'라는 뜻이다. 물론 김지찬 교수는 기드온이 이 이름을 지은 것은 맞지만 그 뜻을 자기 왕권으로 바꾸어 쓴 사람은 훗날의 아비멜렉이라고 본다. 그래도 왕이 되지 않겠다고 말한 사람의 집에 '내 아버지는 왕'이라는 이름이 남았다는 사실만은 그대로 남는다.

    그렇기에 기드온이 죽자 이스라엘은 곧바로 돌아선다.

    삿 8:33-34 기드온이 이미 죽으매 이스라엘 자손이 돌아서서 바알들을 따라가 음행하였으며 또 바알브릿을 자기들의 신으로 삼고 34 이스라엘 자손이 주위의 모든 원수들의 손에서 자기들을 건져내신 여호와 자기들의 하나님을 기억하지 아니하며

    그들이 다시 섬긴 바알이 누구인가. 사십 년 전 기드온이 헐어 낸 바로 그 신이다. 자기 제단이 무너지는데도 기드온에게 손 하나 대지 못했던 그 무력한 신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다시 그 앞에 엎드린다. 바알을 무너뜨린 사람의 시대가 끝나자, 이스라엘은 다시 바알에게로 돌아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절에서 저자는 그를 여전히 '여룹바알이라 하는 기드온'이라고 부른다. '바알이 그와 다투게 하라'는 이름이다. 그 이름이 이스라엘이 바알에게 돌아가는 장면에 놓여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본문을 주해하면서 기독교 역사 속에 수많은 지도자들의 스쳐지나갔다. 처음에는 바른 신학을 가르치고 바른 고백을 하고 우상을 헐라고 외쳤던 사람들이, 끝에 가서는 자기 이름과 자기 자리를 세우는 데로 기울었던 적이 많이 있다. 그런데 그들을 손가락질하기 전에 내가 먼저 물어야 할 것이 있다. 나는 어떤가. 혹시 나도 나만의 에봇을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기드온이 만든 것은 바알이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속한 물건을 만들었다. 그러니 내가 만드는 에봇도 내가 좋아하는 무엇이 아닐 것이다. 교회를 위해 시작한 일, 사역을 더 잘하려고 세운 방식, 은혜를 기억하려고 만들어 둔 자리, 그런 것들일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것이 하나님보다 더 지키고 싶은 것이 되어 있다면, 사람들이 하나님이 아니라 그것을 보고 모여든다면, 그것은 이미 기드온이 만든 그 에봇이 되는 것이다. 더 무서운 것은 기드온이 그것을 오브라에 두었다는 사실이다. 자기가 부름받고 우상을 허물었던 그 성읍이다. 내가 가장 뜨겁게 하나님을 만났던 자리, 내가 무언가를 정리하고 결단했던 그 자리가, 세월이 지나 내가 가장 붙잡고 놓지 못하는 자리가 되어 있지는 않은지... 오늘 나는 그것이 두렵다. 신앙에서 가장 위험한 우상은 하나님과 정반대의 얼굴로만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때로는 내가 받은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을 위해 만들었던 것의 얼굴로 온다. 그렇기에 오늘은 내가 손으로 만든 것들을 하나씩 내려놓고, 나를 다스리시는 분이 오직 여호와이심을 말로만이 아니라 삶으로 고백하는 자리로 나아가기를... 그리고 그 고백이 내 사십 년 뒤에도 남아서 함께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던 모든 지체들이 여전히 바른 신앙 안에 서 있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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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標題:造了一個以弗得

    昨天的經文中,基甸打了勝仗。然而在那勝利的尾聲,他的言行已經開始出現裂痕。今天的經文,讓我們看見那道裂痕究竟蔓延到了什麼地步。

    戰爭結束後,百姓來找基甸。

    士8:22 那時,以色列人對基甸說:「你既救我們脫離米甸人的手,願你和你的兒子、孫子管理我們。」

    這句話裡有一個詞我們必須抓住,就是「救」這個字。當然,神確實對基甸說過:「你去,……必能救以色列人脫離米甸人的手」(6:14),所以基甸確實是蒙召作拯救之工具的人。然而,使用他作工具、使他得勝的,是神。可是戰爭一結束,百姓卻把原本作工具的人,放到了拯救者的位置上。是的,這正是神原先想要防止的那句話。神把三萬二千人減少到三百人,原因就是擔心「以色列人向我誇口說:是我們自己的手救了我們」(7:2),而如今百姓卻把那全部的榮耀歸給了人。

    然而,面對百姓這樣的請求,基甸的回答卻出人意料。

    士8:23 基甸說:「我不管理你們,我的兒子也不管理你們,耶和華必管理你們。」

    這一句話的分量,我們不可輕看。這正承接著渡過紅海的以色列人所唱的那句:「耶和華必作王,直到永永遠遠」(出15:18)。金志燦教授特別指出,在整卷士師記中,說出這句話的人只有基甸一人。所以士師記在最後感嘆「那時以色列中沒有王」時,在書中真正對這個問題作出正確回答的,正是基甸。由此可見,基甸是知道正確答案、也說出了正確答案的人。這也正是他被安放在士師記正中央的原因。

    問題出在下一節。就在說出「耶和華必管理你們」這句話的同一張口,基甸卻向百姓索要戰利品。就這樣收集來的金子共有一千七百舍客勒,大約二十公斤。這是只有王的府庫裡才會有的數量。此外還加上米甸諸王的月牙飾物、紫色衣服,以及駱駝頸項上的鏈子。原本說自己不願作王的人,王室的物品卻全都落入了他的手中。而他用這些金子,造了一件東西。

    士8:27 基甸以此製造了一個以弗得,設立在他本城俄弗拉。全以色列人都到那裡行邪淫,拜這以弗得,這就成了基甸和他全家的網羅。

    以弗得原本是屬於祭祀制度的聖物。只是基甸所造的這個以弗得究竟是什麼形狀,並不確定。是仿照祭司的衣服用金子做成的衣飾,還是披在某種偶像身上的東西,又或者是別的什麼,經文並未明言。因此我們可以推測,基甸最初製作它時,或許是想作為求問神旨意的聖物。然而作者對其結果卻毫不含糊地下了定論——全以色列人「行邪淫」拜這以弗得,它成了基甸和他全家的「網羅」。這裡我們必須認真思考的是,這兩個詞正是聖經在指控赤裸裸的偶像崇拜時所使用的詞語。

    這正是可怕之處。基甸並沒有立起巴力的祭壇,他造的是一件聖物。可是百姓卻拜起了它。偶像從來不總是明目張膽地打著巴力的名號而來,有時它披著信仰的外衣而來。因此,雖然我們無從得知基甸的本意如何,但他的行為已經觸犯了第二誡,並因此把全以色列引向了錯謬的信仰。

    還要留意他把這東西放在了哪裡——俄弗拉。正是那座城,是基甸蒙神呼召的地方,也是他拆毀父家巴力祭壇的地方。那個曾經拆毀偶像的城,四十年後竟成了全以色列前來敬拜偶像的城。

    當然,這並不代表神就此棄絕了他。米甸人再也沒有抬頭,基甸在世的四十年間,那地太平無事。而「那地太平」這句話,在士師記中最後一次出現正是在這裡。基甸晚年如此,那地卻依然太平,這意味著這份太平並非因基甸做得好而得來的。

    那麼那四十年間,基甸是怎樣生活的呢?士師記的作者只簡短記載:他住在自己家中,有許多妻子,有七十個兒子,又在示劍立了一個妾。律法明明規定王不可多立妻妾(申17:17),他卻毫不在意。而他為那妾所生的兒子取名叫亞比米勒,意思是「我父是王」。當然,金志燦教授認為雖然這名字確實是基甸所取,但把這名字的意思轉為自己王權野心的人,是後來的亞比米勒本人。即便如此,一個曾說自己不願為王的人的家中,竟留下了「我父是王」這樣的名字,這個事實依然無法抹去。

    也因此,基甸一死,以色列人立刻轉離神。

    士8:33-34 基甸死後,以色列人又去隨從諸巴力行邪淫,以巴力比利土為他們的神。34 以色列人不記念耶和華他們的神,就是拯救他們脫離四圍仇敵之手的那位;

    他們再次去侍奉的巴力,是誰呢?正是四十年前基甸親手拆毀的那位神。是那個祭壇被毀時,對基甸連一根手指都動不了的軟弱無力的神。然而以色列人卻再次俯伏在它面前。那位擊倒巴力之人的時代一結束,以色列便又回到了巴力那裡。而在最後一節,作者仍稱他為「耶路巴力,就是基甸」——那名字的意思是「讓巴力與他爭論」。而這個名字,正被放置在以色列重新歸向巴力的場景之中。

    在默想這段經文時,我個人腦海中掠過了基督教歷史中無數位領袖的身影。有許多人起初教導純正的神學、作出純正的信仰告白,高喊要拆毀偶像,可是到了最後,卻漸漸傾向於建立自己的名聲與地位。然而在指責他們之前,我首先該問的是自己——我又如何呢?我是否也在不知不覺中,造著屬於我自己的以弗得?這裡有一點不可忽略:基甸所造的並非巴力,他造的是一件屬於敬拜神之事的物件。所以我所造的以弗得,恐怕也不會是我單純喜歡的什麼東西,而更可能是——為了教會而開始的事工、為了把服事做得更好而建立的模式、為了紀念恩典而設立的某個位置——諸如此類的事物。可是若在某個時刻,那些東西變得比神本身更值得我去守護,若人們聚集起來看的不是神、而是那件東西,那麼那便已經成了基甸所造的那個以弗得。更可怕的是,基甸把它放在了俄弗拉——那個他蒙召、也曾親手拆毀偶像的城。我最熱切遇見神的地方,我曾做出某種了斷與決志的那個地方,是否隨著歲月流逝,反而變成了我最緊抓不放的地方……今天我對此感到懼怕。信仰中最危險的偶像,並不總是以與神截然相反的面貌前來。有時候,它披著我為神所造、心懷感恩之物的面貌前來。因此,願我今天能一一放下自己親手所造的東西,來到那使我不僅用口說、更用生命見證「唯有耶和華掌管我」的地方……也願這樣的告白,在我的四十年之後依然長存,願一同事奉耶和華神的眾肢體,至今仍然站立在純正的信仰之中,我如此禱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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