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 사사기 10:1–18
今日默想:士師記10:1–18
제목 : 마음에 근심하시니라
어제 우리가 읽은 9장은 하나님께서 아비멜렉의 악과 세겜 사람들의 악을 그들의 머리에 갚으시는 장면으로 닫혔다. 피비린내 나는 3년이 그렇게 끝났다. 그런데 오늘 10장은 아주 조용한 두 사람의 이름으로 시작한다. 잇사갈 사람 돌라와 길르앗 사람 야일이다. 돌라는 아비멜렉의 뒤를 이어 일어나 이스라엘을 구원했고 23년 동안 사사로 있었다. 야일은 22년 동안 사사로 있었는데, 아들 서른 명이 나귀 서른 마리를 타고 성읍 서른 곳을 가졌다고 한다. 합하면 45년 동안 외적의 침략도 전쟁도 기록되지 않는다. 그런데 본문은 이 기간을 두고 '그 땅이 평온하였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전에 이야기 했듯이 그 말은 기드온 때가 마지막이었다. 전쟁은 없었는데 평온하다는 선언도 없다. 그리고 야일이 죽자마자 이스라엘은 다시 무너진다.
삿 10:6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과 아스다롯과 아람의 신들과 시돈의 신들과 모압의 신들과 암몬 자손의 신들과 블레셋 사람들의 신들을 섬기고 여호와를 버리고 그를 섬기지 아니하므로
사사기에서 가장 긴 우상 목록이다. 일곱 부류의 신들이 줄지어 나온다. 동서남북 어디를 둘러보아도 이스라엘이 섬기지 않은 신이 없다. 그런데 마지막에 이렇게 강조한다. '여호와를 버리고 그를 섬기지 아니하므로.' 이제는 여러 신 가운데 여호와를 하나로 끼워 두는 정도가 아니다. 아예 버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이스라엘을 블레셋과 암몬의 손에 넘기신다. 암몬은 요단 동편의 길르앗을 18년 동안 짓밟고, 요단을 건너 유다와 베냐민과 에브라임까지 쳐들어온다.
그러자 이스라엘이 부르짖는다.
삿 10:10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들을 섬김으로 주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
사사기에서 이스라엘은 지금까지는 그냥 울며 부르짖기만 했다. 그런데 자기 죄를 입으로 분명히 고백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니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곧바로 구원자를 보내 주실 것 같다. 하지만 하나님의 대답은 전혀 뜻밖이다.
삿 10:13–14 너희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니 그러므로 내가 다시는 너희를 구원하지 아니하리라 14 가서 너희가 택한 신들에게 부르짖어 너희의 환난 때에 그들이 너희를 구원하게 하라 하신지라
그 앞에서 하나님은 애굽과 아모리와 암몬과 블레셋과 시돈과 아말렉과 마온, 일곱 민족을 하나씩 나열하신다. 그리고 너희는 일곱 부류의 신들을 섬겼는데, 그 일곱 민족의 손에서 너희를 건져 낸 이는 누구였느냐고 묻고 계시는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다시는 구원하지 아니하리라'고 선언하신다. 이처럼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에 구원을 거절하신 것은 사사기에서 처음이다. 사사기를 전체적인 시각에서 보면 기드온 때는 한 선지자를 보내 꾸짖으셨다. 그런데 지금은 하나님께서 직접, 훨씬 엄하게 말씀하신다. 그리고 삼손 때에 가면 이스라엘은 아예 부르짖지도 않는다. 사사기는 이렇게 점점 아래로 내려가는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너희가 택한 신들에게 부르짖으라.'는 말이 참 아픈 말이다. 즉 이스라엘은 평소에는 다른 것을 택해 살다가 급할 때만 찾아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래 하나님은 비상시에만 쓰는 도구가 아니시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다시 엎드린다.
삿 10:15–16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여쭈되 우리가 범죄하였사오니 주께서 보시기에 좋은 대로 우리에게 행하시려니와 오직 주께 구하옵나니 오늘 우리를 건져내옵소서 하고 16 자기 가운데에서 이방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를 섬기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곤고로 말미암아 마음에 근심하시니라
이스라엘은 '주께서 보시기에 좋은 대로 하소서.'라고 고백하기에 마치 온전한 항복처럼 들린다. 그런데 곧바로 '오직 오늘 우리를 건져내옵소서'가 붙는다. 주님 뜻대로 하시되, 지금 이 문제만은 해결해 달라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이 회개가 거짓이었다는 말은 아니다. 그들은 실제로 이방 신들을 없애고 여호와를 섬겼다. 말뿐 아니라 행동이 따랐다. 그래서 신학자들은 다만 그 안에는 진심 어린 항복과 당장 살고 싶은 절박함이 함께 섞여 있었다고 평가를 한다.
그런 상황 속에서 본문은 이렇게 기록한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곤고로 말미암아 마음에 근심하시니라.' 원문을 그대로 옮기면 그의 영혼이 짧아졌다는 뜻이다. 즉 더는 참을 수 없다, 더는 견딜 수 없다는 뜻이다. 훗날 삼손이 들릴라의 조름에 마음이 번뇌하여 죽을 지경이 되었을 때 쓰인 바로 그 표현이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고통을 더는 견디지 못하셨다는 것이다. 그렇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회개 때문에' 마음을 돌이키셨다고 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의 '곤고 때문에' 근심하셨다고 한다. 물론 그들의 회개는 실제였다. 그러나 구원의 뿌리는 여전히 하나님의 긍휼이었다. 조금 전에 다시는 구원하지 않겠다고 하신 분이, 자기 백성이 부서지는 것을 끝내 그냥 두고 보지 못하신다. 이처럼 하나님은 책망하시되 버리지 않으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긍휼이다.
그런데 참 씁쓸하게도, 오늘 본문의 마지막 장면은 이렇게 기록한다.
삿 10:18 길르앗 백성과 방백들이 서로 이르되 누가 먼저 나가서 암몬 자손과 싸움을 시작하랴 그가 길르앗 모든 주민의 머리가 되리라 하니라
사사기 1장에서 이스라엘은 '누가 먼저 올라가서 싸우리이까' 하고 여호와께 여쭈었다. 그런데 지금은 같은 질문을 자기들끼리 서로 묻는다. 방금 이방 신들을 버리고 여호와를 섬기겠다고 한 사람들이, 막상 적이 눈앞에 오자 하나님께 묻지 않는다. 그리고 보상을 걸고 지도자를 모집한다. 하나님께서 사사를 세우시던 이야기가, 이제 사람이 조건을 내걸고 지도자를 찾는 이야기로 바뀐다. 하나님은 그들 때문에 마음 아파하시는데, 그들은 여전히 하나님을 빼놓고 움직인 것이다.
오늘 나는 '마음에 근심하시니라'는 이 말씀을 깊이 생각해 본다. 그리고 그 긍휼이 가장 필요한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을 고백하게 된다. 목사로 살면서 나는 이 은혜를 늘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 왔다.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신다고, 돌아오면 받아 주신다고... 그런데 솔직히 내 기도를 돌아보면 이스라엘과 그렇게 다르지 않다. 평소에는 내 판단과 내 계산으로 살다가, 문제가 목까지 차오르면 그제야 무릎을 꿇는다. "주님 뜻대로 하소서"라고 기도하면서도 속으로는 오직 오늘, 이 문제만은... 하고 붙잡을 때가 많다. 그리고 건져 주시고 나면 또다시 하나님께 묻지 않고, 사람들과 의논하며 내 길을 찾는다. 그렇기에 이처럼 하나님께서 "다시는 너를 구원하지 않겠다"고 하셔도 할 말이 없는 사람이 바로 나다. 그런데 그런데 그런 나의 곤고를 하나님은 끝내 견디지 못하신다고 하신다. 그래. 나를 붙드는 것은 내 회개가 얼마나 완전했느냐가 아니라, 나를 보고 마음 아파하시는 하나님의 긍휼이다. 그렇기에 내가 받은 은혜를 가볍게 여길 수 없다. 그 은혜가 있으니 이제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나의 몫이다. 그래서 오늘은 급할 때만 찾는 자가 아니라, 평안한 날에도 먼저 하나님께 여쭙는 자로 살고, 나 때문에 마음 아파하시는 그 사랑을 오늘은 잊지 않는 삶이 되길 소망한다. 그리고 우리 공동체의 지체들도 함께 그 은혜를 잊지 않는 삶을 살아가길 기도한다.
標題:耶和華心中憂煩
昨天我們讀的第9章,是以神將亞比米勒的惡行與示劍人的惡行歸還在他們自己頭上作結。那血腥的三年就這樣結束了。然而今天的第10章,卻以兩位非常平靜的人名開始——以薩迦人陀拉和基列人睚珥。陀拉接續亞比米勒興起,拯救了以色列,作士師二十三年。睚珥作士師二十二年,他有三十個兒子,騎著三十匹驢駒,擁有三十座城邑。合計四十五年間,並未記載任何外敵入侵或戰爭。然而經文並未說這段期間「國中太平」。正如先前所提,這句話最後一次出現是在基甸的時代。這裡沒有戰爭,卻也沒有太平的宣告。而睚珥一死,以色列便再次崩潰。
士10:6 以色列人又行耶和華眼中看為惡的事,去事奉諸巴力和亞斯她錄,並亞蘭的神、西頓的神、摩押的神、亞捫人的神、非利士人的神,離棄耶和華,不事奉他。
這是士師記中最長的偶像名單。七類神明依次列出。無論放眼東西南北,以色列沒有一個神明是他們不曾侍奉過的。而經文最後如此強調:「離棄耶和華,不事奉他。」如今已不是把耶和華夾雜在眾神之中當作其一,而是徹底離棄了祂。於是神發怒,將以色列交在非利士人和亞捫人手中。亞捫人在約旦河東的基列蹂躪了十八年,甚至渡過約旦河,攻打猶大、便雅憫,直到以法蓮。
於是以色列呼求:
士10:10 以色列人哀求耶和華說:「我們得罪了你;因為離棄了我們神,去事奉諸巴力。」
在士師記中,到目前為止,以色列都只是哭泣呼求而已。然而這一次,他們第一次清楚用口承認了自己的罪。照理說,這次神應該會立刻差遣拯救者。然而神的回答卻完全出人意料。
士10:13–14 你們竟離棄我,事奉別神!所以我不再拯救你們了。14 你們去哀求所選擇的神;你們遭遇急難的時候,讓他們拯救你們罷!
在此之前,神一一列舉了埃及、亞摩利、亞捫、非利士、西頓、亞瑪力、瑪雲,共七個民族。祂在問:你們事奉了七類神明,但從這七個民族手中拯救你們的又是誰呢?接著祂宣告:「我不再拯救你們了。」像這樣,對以色列的呼求拒絕施行拯救,這在士師記中是頭一次。若從士師記整體來看,基甸的時代,神只是差遣一位先知來責備;而如今,神親自、且更加嚴厲地說話。到了參孫的時代,以色列甚至根本不再呼求了。士師記正描繪出這樣一條逐漸向下沉淪的曲線。而這裡「去哀求你們所選擇的神」這句話,實在令人心痛。因為以色列平日總是選擇別的東西度日,只有到了危急時刻才回頭尋求神。而神在此表明,祂並不是那樣的神——神絕非只在緊急狀況才被使用的工具。
於是以色列再次俯伏:
士10:15–16 以色列人對耶和華說:「我們犯罪了,任憑你隨意待我們罷!只求你今日拯救我們。」16 以色列人就除掉他們中間的外邦神,事奉耶和華;耶和華因以色列人受的苦難,就心中擔憂。
以色列說「任憑你隨意待我們」,聽起來彷彿是完全的降服。然而緊接著又加上一句「只求你今日拯救我們」。意思是:照你的旨意行,但眼下這個難題,請務必為我們解決。當然,這並不是說這次的悔改是虛假的。他們確實除掉了外邦的神,轉而事奉耶和華。不僅是言語,更有行動相隨。因此神學家們評論說,這其中確實混雜著真心的降服,以及渴望立刻脫困的迫切之心。
在這樣的情境下,經文如此記載:「耶和華因以色列人受的苦難,就心中擔憂。」若照原文直譯,意思是祂的心靈變得短促了——也就是說,再也無法忍受,再也無法承受下去。這正是日後參孫因大利拉的糾纏,心裡煩悶幾乎要死時所用的同一個詞語。由此可見,是神無法再忍受以色列的痛苦了。是的,經文並未說神是「因他們的悔改」而回心轉意,而是說神「因以色列的苦難」而心中擔憂。當然,他們的悔改是真實的。然而拯救的根源,始終在於神的憐憫。方才才宣告「不再拯救」的那一位,終究無法眼睜睜看著自己的百姓崩潰而不顧。如此,神責備,卻不離棄。這就是神的憐憫。
然而,令人頗為苦澀的是,今天經文的最後一幕如此記載:
士10:18 基列的民和眾首領彼此商議說:「誰能先去攻打亞捫人,誰必作基列一切居民的頭。」
在士師記第1章,以色列曾向耶和華求問:「我們中間誰當首先上去攻擊他們?」然而如今,同樣的問題卻是他們彼此互相商議。剛才才聲稱要除掉外邦神、轉而事奉耶和華的這群人,敵人一到眼前,卻不再求問神,反倒懸賞招募領袖。神親自設立士師的故事,如今變成了人們開出條件、招聘領袖的故事。神正因他們而心中憂傷,他們卻依然把神撇在一旁行事。
今天,我深深思想「心中擔憂」這句話。也承認自己正是最需要那份憐憫的人。身為牧師,我常常把這樣的恩典傳講給別人聽——神不會離棄我們,只要回轉就必蒙祂接納……然而說實話,回顧自己的禱告,其實和以色列人並沒有太大的不同。平日總是憑自己的判斷、自己的算計過日子,等到問題逼到喉頭,才終於跪下。嘴上禱告說「願你的旨意成就」,心裡卻常常盤算著:只求今日,只求解決這一件事……而蒙拯救之後,又不再求問神,反倒與人商量,自己尋找出路。所以,即便神說「我不再拯救你了」,我也無話可說——那正是我。然而,正是這樣困苦的我,神卻說祂終究無法忍受。是的,能夠支撐我的,並非我的悔改有多麼完全,而是神看見我便心生憐憫。正因如此,我不能輕看自己所領受的恩典。既有這恩典,如今全心愛神便是我當盡的本分。因此,願今天的我不再只是遇到急難才尋求神的人,而是即便平安的日子裡,也先向神求問的人;願我今日不忘記那位因我而心痛的愛。也願我們群體中的弟兄姊妹,都能一同活出不忘記這恩典的生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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