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목록
    Devotion · 默想

    오늘의 묵상 : 사사기 6:1–10

    今日默想:士師記 6:1–10

    한경우··조회 83

    제목 :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오늘부터 기드온 이야기가 시작된다. 기드온 이야기는 사사기에서 가장 길고 가장 자세한 사사 이야기다. 6장부터 8장까지 기드온이고, 9장은 그 아들 아비멜렉이다. 사사기의 한복판에 기드온 집안이 놓여 있는 것이다. 옷니엘과 에훗과 드보라까지는 저자가 사사의 결점을 이야기의 주제로 삼지 않았는데, 기드온부터는 사사 자신의 결함이 이야기의 중요한 주제가 되기 시작한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그 긴 이야기의 시작부분이다.

    삿 6:1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칠 년 동안 그들을 미디안의 손에 넘겨 주시니

    순환의 요소들이 다시 나온다. 이스라엘이 또 악을 행했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 넘기셨고, 압제가 칠 년 이어졌다. 미디안은 이스라엘에게 완전히 낯선 민족이 아니었다. 미디안은 아브라함이 그두라에게서 낳은 자손이고(창 25:2), 모세의 장인 전승과도 연결되며, 한편 민수기 25장에서는 모압과 함께 이스라엘의 바알브올 범죄와 연관된다. 이제 그 미디안이 아말렉과 동방 사람들을 데리고 온다. 압제 기간은 칠 년이다. 옷니엘 때 팔 년, 에훗 때 열여덟 해, 드보라 때 이십 년에 비하면 짧다. 그런데 저자는 이 칠 년을 지금까지의 어떤 압제보다 자세하게 묘사한다. 이스라엘은 산에 웅덩이와 굴과 산성을 만들어 숨었다(2절). 미디안은 이스라엘을 정복해서 다스린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이 씨를 뿌리면 그때 올라와서 진을 치고, 자라는 곡식을 가축에게 먹이고, 양과 소와 나귀까지 가져갔다(3–4절). 조공을 받는 압제가 아니라 먹고살 길 자체를 끊는 압제였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궁핍함이 심한지라"(6절). 여기 '궁핍하다'는 낮아지고 쪼그라들었다는 뜻인데 이처럼 이스라엘은 경제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쪼그라들었다는 것이다.

    삿 6:6–7 이스라엘이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궁핍함이 심한지라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 7 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부르짖었으므로

    이스라엘이 부르짖었다는 말이 6절과 7절에 두 번 나온다. 김지찬 교수는 이 반복이 울부짖는 백성의 모습을 더욱 애처롭게 만든다고 표현한다. 그래 어쩌면 이스라엘은 전보다 더 간절하게 부르짖었을 것이다. 그런데 본문은 이 부르짖음을 회개나 죄 고백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어지는 선지자의 책망을 보면, 이 부르짖음은 우선 고통 속에서 터져 나온 구조 요청으로 보인다. 그리고 독자는 여기서 "여호와께서 구원자를 세우셨다"를 기대한다. 지금까지 사사기가 그렇게 흘러왔기 때문이다.

    삿 6:8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한 선지자를 보내시니 그가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의 하나님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며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나오게 하여

    그런데 하나님은 구원자가 아니라 '한 선지자'를 보내신다. 드보라는 선지자이면서 동시에 사사로서 백성을 일으켜 구원했는데, 이 선지자는 말씀만 전하고 사라진다. 그렇기에 이 선지자의 역할은 구원이 아니라 언약 소송이다. 이스라엘이 언약을 어겼다는 것을 하나님이 공식으로 기소하시는 것이다. 사사기가 지금까지 반복해 온 순환의 구조가 여기서 처음 바뀐다. 김지찬 교수는 이것을 '여호와의 불쾌감'이라고 표현한다. 전에는 이스라엘이 부르짖으면 즉각 사사를 보내 구원하시던 여호와께서 이제는 선지자를 보내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에 대해 불쾌한 속내를 비치신다는 것이다. 이처럼 본문이 하나님의 마음을 직접 말하지는 않지만, 구조가 바뀌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기에 이번에는 구원보다 진단이 먼저 온 것이다.

    그런데 선지자가 전하는 말씀의 첫 마디는 책망이 아니다.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며." 하나님은 먼저 자신이 누구인지를 말씀하신다. 그리고 8절과 9절에서 '내가'가 반복된다.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냈다. 내가 너희를 종 되었던 집에서 나오게 했다. 내가 너희를 학대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건져 냈다.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냈다. 내가 그 땅을 너희에게 주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이 다섯 번 '내가'로 쌓인다. 그 다음에 10절이 온다.

    삿 6:10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기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 너희가 거주하는 아모리 사람의 땅의 신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였으나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셨다 하니라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요구하신 것은 하나였다. 아모리 사람의 땅의 신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여기서 '두려워하다'는 단순히 가나안 신들을 무서워한다는 뜻을 넘어, 그 신들에게 종교적 경외와 충성을 돌리는 것을 포함하는 것이다. 그런데 신명기에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과 여호와의 목소리를 듣는 것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늘 함께 묶이는 것과 같은 언어였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그 땅의 신들을 두려워했다. 이것은 추상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바로 다음 단락에서 기드온의 아버지 집에 바알의 제단과 아세라 목상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6:25–32). 미디안이 메뚜기 떼처럼 올라와 곡식을 먹어 치우던 그 칠 년 동안, 이스라엘은 비와 곡식의 신 바알의 제단을 집 안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판정이 2:2와 똑같다.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내가 했다, 내가 했다, 내가 했다, 그런데 너희는 듣지 않았다. 이것이 선지자가 이스라엘을 향해 선포하는 말씀의 구조이다.

    그리고 선지자의 말은 여기서 끝난다. 구원의 약속이 없다. 책망만 하고 선지자는 사라진다. 이 침묵이 독자를 불안하게 한다. 이번에는 정말 구원이 없는가. 그런데 바로 다음 절, 6:11에서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난다. 그러니까 두 층위를 구분해서 읽어야 한다. 선지자의 말씀 자체에는 구원 약속이 없다. 그러나 이야기 전체에서는 하나님의 구원이 이미 시작되고 있다. 그렇기에 오늘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전에 그들이 왜 이 가나안 땅에 있는지를 먼저 알려주시고 계신 것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두 번이나 부르짖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부르짖음을 들으셨다. 그래 하나님이 선지자를 보내신 것은 부르짖음을 들으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하신 말씀은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느니라"였다. 이처럼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자기들의 소리를 들어 주시기를 바라면서 하나님의 목소리는 듣지 않았다. 칠 년 동안 부르짖기 전에, 이스라엘이 듣지 않았던 시간이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그 시간을 짚으신 것이다. 그렇기에 사사기의 순환이 돌수록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은 같은데 하나님의 응답은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개인적인 묵상을 하면서 나 역시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느니라"라는 말씀을 깊이 생각한다. 왜냐하면 요즘 나는 부르짖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형편이 어두워지면서 기도가 많아졌고, 그 기도는 대부분 하나님이 내 소리를 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이 상황을 봐 달라고, 이 일을 풀어 달라고, 내 말을 들어 달라고. 그런데 오늘 본문이 나에게 묻는다. 너는 하나님의 목소리를 얼마나 들었느냐고... 이스라엘이 그랬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들으시기를 바라면서 자기는 듣지 않았고, 그래서 하나님은 그 부르짖음에 구원이 아니라 진단으로 먼저 응답하셨다. 그런데 이 본문은 나에게 두 가지를 더 말해 준다. 하나는 하나님이 선지자를 보내셨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책망도 응답이었다. 다른 하나는 선지자의 말에는 구원이 없었지만 이야기에는 구원이 있었다는 것이다. 선지자는 "너희가 듣지 않았다"에서 말을 끝냈지만, 바로 다음 절에서 하나님은 기드온을 부르고 계셨다. 지금 나에게 들리는 하나님의 말씀에는 아직 구원의 약속이 보이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이야기 전체에서 하나님은 이미 다음 절을 쓰고 계신다. 그 선지자의 침묵과 하나님의 다음 행동 사이의 간격이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다. 그러니 오늘 나는 하나님께 내 소리를 들어 달라고 부르짖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목소리 앞에 조용히 앉고, 내가 듣지 않았던 시간을 정직하게 인정하며, 아직 보이지 않는 다음 절을 이미 쓰고 계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하루가 되길 소망한다. 그리고 오늘도 그 하나님의 말씀하심에 귀 기울여 들을 수 있길 기도한다.

    中文 AI翻譯

    標題:你們竟不聽從我的話

    從今天開始,基甸的故事登場了。基甸的故事是士師記中篇幅最長、記述最詳細的士師故事。第6章到第8章講的是基甸,第9章則是他的兒子亞比米勒。基甸家族正好位於士師記的正中央。從俄陀聶、以笏到底波拉,作者都沒有把士師本身的缺點當作故事的主題,但從基甸開始,士師自身的缺陷開始成為故事的重要主題。而今天的經文正是這段漫長故事的開端。

    士6:1 以色列人又行耶和華眼中看為惡的事,耶和華就把他們交在米甸人手裡七年。

    循環的要素再次出現。以色列又行了惡,耶和華把以色列交在米甸人手中,壓迫持續了七年。米甸對以色列而言並非完全陌生的民族。米甸是亞伯拉罕從基土拉所生的後裔(創25:2),也與摩西岳父的傳承有所連結;另一方面,在民數記25章中,米甸與摩押一同牽涉到以色列在巴力毘珥的罪行。如今這個米甸,帶著亞瑪力人和東方人一同前來。壓迫期間是七年,比起俄陀聶時期的八年、以笏時期的十八年、底波拉時期的二十年來得短。然而作者對這七年的描寫,卻比以往任何一次壓迫都更加詳細。以色列人在山中挖造洞穴、山寨、山頂的保障躲藏(2節)。米甸並非征服並統治以色列,而是每當以色列人撒種,米甸人就上來安營,把生長的莊稼餵給牲畜吃,甚至連羊、牛、驢都被擄去(3–4節)。這不是收取貢物的壓迫,而是徹底斷絕生存之路的壓迫。因此以色列人「極其窮乏」(6節)。這裡的「窮乏」意指變得低微、萎縮,也就是說以色列人無論在經濟上還是心理上都萎縮了下去。

    士6:6–7 以色列人因米甸人的緣故極其窮乏,就呼求耶和華。7 以色列人因米甸人的緣故呼求耶和華的時候,

    「以色列呼求」這句話在第6節和第7節出現了兩次。金智燦教授指出,這樣的重複使呼喊的百姓形象更加淒慘動人。或許以色列人的呼求,比以往任何時候都更加迫切。然而經文並沒有把這呼求描寫為悔改或認罪,反倒從隨後先知的責備來看,這呼求首先看起來只是在痛苦中發出的求救之聲。讀者到這裡自然期待「耶和華興起了拯救者」,因為士師記一直以來都是這樣發展的。

    士6:8 耶和華就差遣先知到以色列人那裡,對他們說:「耶和華以色列的神如此說:我曾領你們從埃及上來,出了為奴之家,

    然而神差來的不是拯救者,而是「一位先知」。底波拉既是先知,同時也身為士師興起百姓、拯救他們;但這位先知只是傳達話語之後就消失了。因此,這位先知的角色並非拯救,而是立約的訴訟。神正式起訴以色列違背了約。士師記至此反覆出現的循環結構,在此第一次發生改變。金智燦教授將此稱為「耶和華的不悅」。過去以色列一呼求,耶和華便立即興起士師拯救他們;如今卻先差遣先知,透露出對以色列呼求的不悅之情。經文雖未直接說出神的心意,但結構已然改變,這一點是明確的。因此這一次,診斷先於拯救而來。

    然而先知所傳的話語,開頭並非責備。「我曾領你們從埃及上來。」神首先說明自己是誰。第8節和第9節中,「我」這個字反覆出現。我領你們從埃及上來;我使你們從為奴之家出來;我救你們脫離一切欺壓你們之人的手;我把他們從你們面前趕出去;我將那地賜給你們。神所行的事以五次「我」層層堆疊,接著便是第10節。

    士6:10 又對你們說:我是耶和華你們的神;你們住在亞摩利人的地,不可敬畏他們的神。你們竟不聽從我的話。」

    神向以色列所要求的只有一件事:不可畏懼亞摩利人之地的諸神。這裡的「畏懼」不僅僅是指害怕迦南諸神,更包含了向那些神明歸予宗教性的敬畏與效忠。而在申命記中,敬畏耶和華、聽從耶和華的聲音、事奉耶和華,向來都是緊密相連的同一種語言。然而以色列卻畏懼了那地的諸神。這並非抽象的問題。緊接著下一段就揭露出,基甸父親的家中設有巴力的祭壇和亞舍拉木偶(6:25–32)。就在米甸人如蝗蟲般湧上、吞食莊稼的那七年間,以色列人竟在自己家中供奉著掌管雨水與莊稼之神巴力的祭壇。而神的判決,與2:2一模一樣:「你們竟不聽從我的話。」我做了,我做了,我做了,然而你們卻不聽從。這就是先知向以色列宣告之話語的結構。

    先知的話到此為止,沒有拯救的應許,只有責備,然後先知便消失了。這樣的沉默令讀者感到不安:這一次,難道真的沒有拯救了嗎?然而就在緊接著的下一節,6:11節,耶和華的使者向基甸顯現了。因此我們必須分兩個層次來讀這段經文。就先知的話語本身而言,並沒有拯救的應許;然而就整個故事而言,神的拯救其實已經開始了。因此,透過今天的經文,神在拯救以色列之前,先讓他們明白自己為何身處這片迦南之地。

    以色列向神呼求,而且呼求了兩次,神也聽見了那呼求。神差遣先知,正是因為祂聽見了呼求。然而問題在於,神對以色列所說的話卻是:「你們竟不聽從我的話。」如此看來,以色列一方面盼望神聆聽自己的聲音,另一方面卻不聽從神的聲音。在七年呼求之前,其實早有一段以色列不聽從的時光,而神正是指出了那段時光。因此,隨著士師記循環的一再重演,以色列的呼求雖然相同,神的回應卻已然不同。

    在個人默想的過程中,我也深深思想「你們竟不聽從我的話」這句話。因為最近的我,正是一個不斷呼求的人。隨著處境日漸黯淡,我的禱告也多了起來,而這些禱告大多是求神聆聽我的聲音——求祂看顧這個處境,求祂解決這件事,求祂聽我訴說。然而今天的經文卻在質問我:你究竟聽從神的聲音有多少呢……以色列正是如此。以色列盼望神聆聽,自己卻不聽從,於是神對那呼求的第一個回應,不是拯救,而是診斷。然而這段經文還告訴我兩件事。其一,神差遣先知這件事本身,就代表神已經聽見了以色列的呼求;責備本身也是一種回應。其二,先知的話語中雖然沒有拯救,但整個故事中卻有拯救。先知的話停在「你們不聽從」,然而就在緊接的下一節,神已經在呼召基甸了。此刻我所聽見的神的話語中,或許還看不見拯救的應許;然而在整個故事裡,神其實早已在書寫下一節了。先知的沉默與神接下來的行動之間的那段空白,正是我此刻所站立的地方。因此,願我今天在向神呼求「求你聽我的聲音」之前,先安靜坐在神的話語面前,誠實承認自己曾經不聽從的那段時光,並信靠那位早已在書寫尚未顯明之下一節的神。也願我今天也能側耳傾聽神向我所說的話。

    댓글 / 留言 (0)

    로딩 중...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 留言需要先登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