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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votion · 默想

    오늘의 묵상 : 사사기 19:11–21

    今日默想:士師記 19:11–21

    한경우··조회 57

    제목 : 영접하는 자가 없었더라

    레위인 일행은 다섯째 날 해가 기울 무렵에야 베들레헴을 떠났다. 그녀의 마음에 말하러 간 길이 남자들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 식탁이 되었고, 그렇게 머물고 또 머무는 사이에 날이 저물었다. 이제 그들은 해가 지는 길 위에 서 있다.

    삿 19:11–12 그들이 여부스에 가까이 갔을 때에 해가 지려 하는지라 종이 주인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우리가 돌이켜 여부스 사람의 이 성읍에 들어가서 유숙하십시다 하니 12 주인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돌이켜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하지 아니한 이방 사람의 성읍으로 들어갈 것이 아니니 기브아로 나아가리라 하고

    여부스는 오늘의 예루살렘이다. 그러나 그때는 아직 이스라엘의 성읍이 아니었다. 베냐민 지파가 끝내 쫓아내지 못한 여부스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해는 지려 하고, 종은 이곳에서 묵어 가자고 한다. 그런데 레위인은 거절한다. 이방 사람의 성읍에는 들어가지 않겠다고, 이스라엘 자손의 성읍인 기브아까지 가겠다고. 생각해 보라. 사사기 내내 이스라엘은 가나안 사람들과 섞여 살아왔다. 그런데 이제 와서 레위인은 이방 성읍에서 하룻밤도 묵지 않겠다고 한다. 그는 같은 이스라엘 사람들 사이가 더 안전하리라 여겼다. 그러나 여기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가 위험하다며 지나친 곳은 이방인의 성읍이었는데, 그가 안전하리라 믿고 들어간 곳은 하나님의 백성이 사는 성읍이었다.

    그들은 조금 더 걸어 베냐민 땅 기브아에 이른다. 그때 해가 진다.

    삿 19:15 기브아에 가서 유숙하려고 그리로 돌아 들어가서 성읍 넓은 거리에 앉아 있으나 그를 집으로 영접하여 유숙하게 하는 자가 없었더라

    그 시대에 나그네를 집으로 맞아들이는 것은 중요한 의무였다. 밤은 길 위의 나그네에게 가장 위험한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스라엘에게는 그보다 더한 것이 있었다. 하나님은 거듭 말씀하셨다. 너희 가운데 거하는 나그네를 너희 자신처럼 사랑하라고,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였음을 기억하라고(신 10:19).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이 사는 성읍 한가운데서, 해 진 거리에 앉은 나그네에게 아무도 문을 열지 않는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기대되는 최소한의 환대조차 이 성읍에서는 사라진 것이다. 어제의 베들레헴을 떠올려 보라. 베들레헴에서는 떠나려는 사람을 닷새나 붙잡았다. 그런데 기브아에서는 들어오려는 사람에게 아무도 문을 열지 않았다. 아직 아무 폭력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무언가가 무너져 있었다. 한 지파가 다른 지파의 형제를 형제로 맞아들이지 않는다. 하나님의 백성이 서로에게 문을 닫은 것이다.

    그때 한 노인이 저녁에 밭에서 일하고 돌아온다. 그런데 성경은 그가 누구인지 굳이 밝힌다. 그는 본래 에브라임 산지 사람으로, 기브아에 타향살이하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한마디를 덧붙인다. '그곳 사람들은 베냐민 자손이더라.' 이 성읍의 본토 사람들은 아무도 문을 열지 않았는데, 문을 연 사람은 그 자신도 나그네인 노인이었다. 노인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느냐고 묻자, 레위인은 자기들에게 나귀 먹이도 양식도 포도주도 다 있으니 부족한 것은 없고, 다만 영접하는 사람이 없을 뿐이라고 대답한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하룻밤 머물 지붕 하나였다.

    삿 19:20–21 그 노인이 이르되 그대는 안심하라 그대의 쓸 것은 모두 내가 담당할 것이니 거리에서는 유숙하지 말라 하고 21 그를 데리고 자기 집에 들어가서 나귀에게 먹이니 그들이 발을 씻고 먹고 마시니라

    "그대는 안심하라." 원문으로는 '그대에게 평안이 있기를', 곧 샬롬이다. 그리고 노인은 거리에서는 밤을 보내지 말라고 강하게 당부한다. 적어도 그는 이 성읍의 밤거리가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그들을 집으로 데려가 나귀를 먹이고, 발을 씻기고, 함께 먹고 마신다. 이제 모든 것이 해결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장면을 천천히 읽어 보라. 해 질 녘 성읍에 도착한 나그네, 광장에서 밤을 지내려는 사람들, 그 성읍 사람이 아닌 집주인, 발을 씻기고 함께 먹는 저녁. 어디선가 본 듯한 장면이다. 그리고 이 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어제 우리는 한 여인의 마음이 들리지 않는 것을 보았다. 오늘은 한 나그네에게 열리는 문이 없는 것을 본다. 레위인은 이방인의 성읍보다 하나님의 백성이 사는 성읍이 안전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기브아에서는 아무도 그에게 문을 열지 않았다. 정작 문을 연 사람은 베냐민 사람이 아니라, 그 자신도 타향살이하던 한 노인이었다. 그리고 그 노인은 그들에게 평안을 빌었지만, 그 밤 그 집에 평안은 오지 않는다.

    나는 오늘 기브아의 넓은 거리에 앉아 있는 그 일행 앞에서 우리 교회의 문을 생각한다. 해는 졌고, 갈 곳은 없고, 아무도 문을 열어 주지 않는 밤. 그때 문을 열어 준 사람들은 대부분 이 땅의 주인이 아니라, 먼저 와서 같은 낯섦을 겪어 본 사람들이었다. 기브아에서 문을 연 사람도 그랬다. 그 성읍의 본토 사람이 아니라, 그 자신도 타향살이하던 한 노인이었다. 그래 환대는 많이 가진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나그네의 마음을 아는 사람에게서 나온다. 그렇다면 우리 공동체는 어떤가. 우리는 모두 이 땅에서 나그네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어느새 우리끼리 익숙한 자리에 앉아, 처음 문을 두드리는 사람을 보지 못하고 지나치고 있지는 않은가. 유학 온 학생들, 일을 찾아 온 사람들, 낯선 도시에 막 짐을 푼 가정들... 그들이 우리 교회 앞 거리에 앉아 있는데, 아무도 영접하는 자가 없었다는 말이 우리 이야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였음을 기억하라고 하셨다. 그래 오늘 우리는 우리가 나그네였던 그 기억으로 다시 문을 연다. 먼저 다가가 이름을 묻고, 함께 먹고, 하룻밤 머물 자리를 내어 주는 공동체로... 우리 교회가 이 도시의 나그네들에게 "그대는 안심하라"고 말할 수 있는 집이 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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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標題:沒有人接待他

    利未人一行人直到第五天日頭偏西時才離開伯利恆。原本是為了挽回她的心而踏上的路程,卻變成了讓男人們心裡歡暢的筵席,就這樣一再地停留,直到天色漸晚。如今他們站在日頭將落的路上。

    士19:11–12 臨近耶布斯的時候,日頭已經落了。僕人對主人說:「我們不如進這耶布斯人的城裡住宿。」12 主人回答說:「我們不可進不屬以色列人的外邦人的城裡去,不如過到基比亞去。」

    耶布斯就是今天的耶路撒冷。但那時它還不是以色列人的城。住在那裡的是便雅憫支派始終未能趕出的耶布斯人。日頭將落,僕人提議在此住宿。然而利未人拒絕了。他說不願進外邦人的城,寧可走到以色列人的城——基比亞去。想想看,整卷士師記裡,以色列人一直都與迦南人雜居共處。可如今利未人卻說,連一夜也不願在外邦人的城裡過。他以為,在自己同胞之中會更安全。但千萬不要錯過這一點:他因為危險而越過不入的,是外邦人的城;他相信會安全而走進去的,卻是神的百姓所居住的城。

    他們又往前走了一段路,來到便雅憫地的基比亞。這時日頭落下了。

    士19:15 他們進入基比亞要在那裡住宿,就坐在城裡的街上,因為沒有人接他們進家裡去住宿。

    在那個時代,接待旅人進家是一項重要的義務,因為黑夜對路上的旅人而言是最危險的時刻。而對以色列人來說,這義務還有更深一層的意義。神曾一再吩咐:要愛你們中間寄居的,如同愛自己一樣,要記念你們在埃及地也曾作過寄居的(申10:19)。然而在神的百姓所居住的城中央,在日落後坐在街上的旅人,竟沒有一個人為他開門。連神的百姓理當具備的最基本款待,在這座城裡也蕩然無存。回想一下昨日的伯利恆——在伯利恆,人們竟挽留想要離開的人長達五天;可是在基比亞,卻沒有人為想要進來的人開一扇門。此刻雖然尚未發生任何暴力,但有些東西早已崩塌了。一個支派不肯以弟兄相待另一個支派的弟兄。神的百姓彼此向對方關上了門。

    這時,有一位老人傍晚從田裡做工回來。聖經特意交代了他的身分——他原是以法蓮山地的人,寄居在基比亞。並且補上一句:「那地方的人是便雅憫人。」這城裡的本地人沒有一個開門,而唯一開門的,竟是這位自己也是寄居者的老人。老人問他們從哪裡來、要往哪裡去,利未人回答說,他們的驢有草料,自己也有糧食和酒,什麼都不缺,只是沒有人接待他們。他們所需要的,不過是一夜棲身的屋簷。

    士19:20–21 老年人說:「願你平安!你所需用的我都給你,只是不可在街上過夜。」21 於是領他們進家,餵上驢,他們就洗腳吃喝。

    「願你平安」——原文是「願平安歸於你」,也就是「沙龍」(shalom)。老人又鄭重叮囑,絕不可在街上過夜。這或許是因為,他清楚知道這座城的夜晚街道並不安全。他把他們領進家中,餵驢、洗腳、一同吃喝。至此,一切似乎都已解決。然而請慢慢重讀這個場景:日落時分抵達城中的旅人,原本打算在廣場過夜的人們,並非本城人氏的主人,洗腳與同席共餐的晚宴……這畫面,彷彿在哪裡見過。而這一夜,還沒有結束。

    昨天,我們看見一個女人的心聲無人聆聽。今天,我們看見一個旅人,無門為他而開。利未人原以為,神的百姓所居住的城會比外邦人的城更安全。然而在基比亞,卻沒有一個人為他開門。真正開門的人,不是便雅憫人,而是一位自己也寄居異鄉的老人。那位老人雖為他們祝願平安,然而那一夜,平安並未臨到那個家。

    今天,面對坐在基比亞街頭的這一行人,我不禁思想我們教會的那扇門。日頭已落,無處可去,卻無人開門的夜晚——在那樣的時刻,為人開門的,往往不是這塊土地的主人,而是那些先來一步、也曾嘗過同樣陌生滋味的人。在基比亞開門的人正是如此——不是本城的子民,而是一位自己也在異鄉寄居的老人。原來,款待並非出於擁有豐富的人,而是出於懂得旅人之心的人。那麼,我們的群體又是如何呢?我們每一個人,其實都是在這地上寄居的旅人。然而我們是否在不知不覺中,已經習慣坐在自己熟悉的位置上,對那第一次叩門的人視而不見、擦肩而過?那些負笈求學的學生、為謀生而來的人、剛在陌生城市卸下行李的家庭……他們此刻正坐在我們教會門前的街上。「沒有人接待他」這句話,絕不能成為我們的寫照。神曾吩咐我們,要記念自己也曾在埃及地作過寄居的。所以,今天讓我們憑著曾經身為旅人的那份記憶,再次打開這扇門——成為主動上前問名、一同進食、願意騰出一夜棲身之處的群體……願我們的教會,能成為對這座城市裡的旅人說「願你平安」的那個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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