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23일 일요일
📖 요한복음 20:19-23
선교적 교회로의 부르심
설교 요약
선교는 하나님의 성품에서 흘러나온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21)는 선교적 교회의 심장이다. '보내셨다'는 완료 시제로, 예수님은 지금도 보냄받은 상태에 계신다. 우리가 그분의 사명을 대신 잇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선교가 우리를 통해 계속된다. 첫째 에토스는 사랑의 공동체다. 두려움에 빗장을 건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주님이 들어오셔서 먼저 평강을 주신다. 무덤의 돌도 그분을 가두지 못했으니 두려움의 빗장도 그분을 막지 못한다. 주님은 그들의 실패를 원망하지 않으시고 관계의 회복부터 시작하신다. 파송과 하나됨은 같은 기도 안에 있으며(17:18, 21), 그 하나됨의 목적은 세상이 믿게 하려는 것이다. 세상이 복음을 믿는 통로는 뛰어난 논증 이전에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다. 둘째 에토스는 십자가다. 주님은 못자국 난 손과 창에 찔린 옆구리로 자신을 확인시키신다. 부활은 십자가를 지우지 않았고, 영광의 몸에 남은 상처는 우연이 아니라 선언이다. '보내신 것 같이'(카도스)는 사명의 방식까지 포함한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성육신과 순종과 십자가로 보내셨듯, 파송받은 우리도 그 길을 간다. 십자가는 믿는 내용의 일부가 아니라 존재하는 방식이다. 내가 감추려는 그 상처가 상처 입은 이웃에게 하나님이 말 거시는 통로가 된다. 셋째 에토스는 재창조하시는 성령님이다. 주님은 숨을 내쉬며 성령을 주신다. '엠퓌사오'는 창세기 2:7과 에스겔 37:9를 잇는 재창조의 언어다. 교회가 새로워지는 것은 조직 재정비가 아니라, 흙덩이에 생기가 들어가고 마른 뼈에 살이 붙는 사건이다. 성령님이 먼저 증언하시고 우리가 함께 증언한다. 안디옥 교회의 선교사 파송도 회의가 아니라 예배의 결과였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 앞서가시는 성령님께 민감한 공동체다.</summary_ko> <parameter name="summary_zh">宣教是從神的屬性流露出來的。「父怎樣差遣了我,我也照樣差遣你們。」(21節)這是宣教型教會的核心。「差遣了」使用完成式,表示耶穌如今仍然處在被差遣的狀態中。不是我們接續祂的使命,而是祂的宣教藉著我們繼續進行。 第一種核心精神,是彼此相愛的群體。復活的主來到因害怕而把門鎖上的門徒中間,首先賜給他們平安。連墳墓的石頭都不能困住祂,因此恐懼所上的門閂也不能攔阻祂。主沒有責怪他們的失敗,而是先從恢復關係開始。差遣與合而為一是在同一個禱告中出現的(17:18、21),而合一的目的,是要使世人相信。世人相信福音的途徑,在卓越的論證之前,是一個彼此相愛的群體。 第二種核心精神,是十字架。主以有釘痕的手和被槍刺過的肋旁來表明自己的身分。復活並沒有抹去十字架,榮耀的身上所留下的傷痕不是偶然,而是一個宣告。「照樣」(καθώς, kathōs)也包含了使命的方式。父怎樣以道成肉身、順服和十字架差遣祂的兒子,被差遣的我們也要走同樣的道路。十字架不是我們所相信內容的一部分,而是我們存在的方式。我一直想隱藏的那個傷口,會成為神向受傷的鄰舍說話的管道。 第三種核心精神,是重新創造的聖靈。主向他們吹氣,把聖靈賜給他們。「έμφυσάω(emphysaō)」是連結創世記2:7和以西結書37:9的重新創造之語。教會的更新,不是重新調整組織,而是生命氣息進入泥土、血肉長在枯骨上的事件。聖靈先作見證,我們也與祂一同作見證。安提阿教會差派宣教士,也不是會議的結果,而是敬拜的結果。我們所需要的,不是更優秀的人,而是一個對走在前面的聖靈敏銳的群體。</summary_zh>